“맥주에 이물질” 전화했더니…민원 뺑뺑이 “해도 너무해”

  • 입력 2005년 7월 2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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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40대 직장인 김영수(가명) 씨는 4일 집에서 A사 맥주를 마시다 검은색 이물질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는 일’ 정도로 생각했다. 맥주를 구입한 슈퍼마켓에서 이물질 확인서를 받은 이유는 A사가 제품관리에 더 신경 쓰도록 ‘조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음 날 신고를 했는데 A사 소비자센터 직원은 약속보다 1시간이나 늦게 나타났다. 속이 상한 김 씨는 직원을 돌려보내고 관할 기관에 신고하기로 마음먹었다. 김 씨의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5일 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신고했더니 “음식물은 먹고 나서 신체적 피해를 본 경우가 아니면 처리가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당황한 김 씨가 다시 묻자 소보원은 “부정불량식품 신고 번호인 1399번으로 전화하라”고 말했다.

1399번은 다른 소리를 했다. “우린 정규 완제품은 취급하지 않고 불량식품만 관리한다. 주류 완제품은 세무서에서 신고를 받을 것이다.”

김 씨는 세무서가 술 문제를 담당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6일 용산세무서 민원실로 전화했다.

세무서 대답 역시 “우리 소관이 아니다”였다. 민원실 직원은 “세무서는 일반 업소의 가정용 주류 사용을 감시하고 위생 문제는 구청이 맡는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양천구청의 부서는 김 씨 전화를 서로 떠넘겼다. 민원실→보건위생과→소비자보호과→민원실…. 30∼40분 뒤 공중위생과 담당자와 겨우 연결이 됐다.

“우리도 맥주에 관한 처리기준이 없어 잘 모르겠는데….”

“담당자라고 했잖습니까.”

“우리 소관이 아니라 그래요. 주류는 국세청이랑 세무서 담당이니 그쪽으로 신고하세요.”

8일 국세청에 전화했더니 “주류 관리는 국세청이 맞으나 개봉된 주류에 이물질이 들어 있는 경우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 씨는 마지막으로 시민단체인 한국소비자연맹으로 전화했다. 그때서야 연락을 받은 A사 소비자센터 직원이 다시 찾아와 “봐 달라”며 사과했다.

본보 취재팀이 일반 시민인 것처럼 신고했더니 마찬가지였다. 용산세무서에서 “양천구에서 일어난 문제를 왜 신고하느냐. 양천세무서로 전화하라”는 말을 들은 것이 김 씨 경우와 다른 유일한 대목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주류의 경우엔 사안마다 관리 담당이 서로 나뉘어 있다 보니 혼선이 온 듯하다”고 해명했다.

소비자연맹의 도영숙(都永淑) 부회장은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민원 담당 공무원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 여전히 많다”며 “원스톱(one-stop) 서비스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담당자 교육에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민혜(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년) 송효은(연세대 신문방송학과 3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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