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잡지 못허연…” 제주 해녀 명맥 끊길 위기

  • 입력 2005년 6월 16일 03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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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는 ‘물질’을 마치고 해안으로 오르고 있다. 해녀들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어 머지않아 이런 풍경을 보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제주=임재영 기자
제주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는 ‘물질’을 마치고 해안으로 오르고 있다. 해녀들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어 머지않아 이런 풍경을 보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제주=임재영 기자
《‘호이∼, 호이∼익.’ 14일 오전 제주 북제주군 조천읍 북촌리 앞 무인도인 다려도 부근 해상. 해녀들이 긴 자맥질 끝에 수면 위로 올라와 호흡을 가다듬으며 길게 내쉬는 ‘숨비소리’가 퍼졌다. 배로 올려진 망사리(해녀가 채취한 해물을 담아놓는 그물로 된 그릇)에는 성게 등 해산물이 20kg 정도 들어 있었다. “하영 잡지 못허연(많이 잡지 못했어). 어디 가신디 눈 씻엉 봐도 어신게(어디 갔는지 눈 씻고 봐도 없어).” 북촌리 해녀 가운데 최고령인 현덕선(78) 할머니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갑판으로 올라 왔다.》

70세가 넘으면 폐활량 때문에 깊은 바다에서 ‘물질(해녀 작업)’을 하는 것이 힘이 부치는데도 현 할머니는 정정했다. 4, 5시간 물질을 하는 현 할머니는 한번 물속에 들어가면 40초 정도 작업을 한다. 15세부터 해녀 일을 시작한 현 할머니는 바다에서 한평생을 보내며 7남매를 잘 키워냈다.

“물질이 하도 지긋지긋허영(물질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자식에게는 바당 저끄티도 오지 말랜 했주(자식들에게는 바다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어).”

대물림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것은 현 할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해녀들도 마찬가지다.

해녀 작업은 생과 사를 넘나들며 상당한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힘든 일인 데다 해녀를 바라보는 눈길이 그다지 곱지 않기 때문.

1966년 2만3000여 명에 이르렀던 해녀는 1970년 1만4143명, 1980년 7804여 명, 1990년 6470명에서 지금은 5650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60세 이상의 해녀가 55.5%를 차지해 10년 뒤에는 얼마나 남아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해녀 작업을 업으로 삼아 어촌계에 가입한 20대 해녀는 단 1명뿐이고 30대 해녀는 제주 전역을 통틀어 81명에 불과하다.

1900년대 러시아 중국 일본 해안까지 진출해 본고장의 실력을 발휘하기도 한 제주 해녀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것.

주요 수입원인 전복 소라 성게 오분자기(떡조개의 제주 방언) 등이 해마다 줄어드는 것도 해녀 일을 기피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자연산 전복은 해녀들도 구경한 지 오래됐고 한 번 작업하면 100kg가량을 잡던 소라도 70kg을 채우기가 벅찬 실정이다.

수심 20m 내외까지 잠수하는 솜씨 좋은 ‘상군’ 해녀는 그나마 수입이 낫지만 60세가 넘은 해녀들은 얕은 바다에 사는 성게를 잡거나 천초, 톳 등 해조류를 뜯으며 생활하는 처지.

오랜 잠수에 따른 두통과 귀의 통증은 해녀들이 겪는 고질적인 질환이다. 한번 잠수할 때마다 두통약과 진통제를 한 줌 입에 털어 넣어야 한다.

북촌리 잠수회 박문희(50) 회장은 “양식장, 대단위 주택 등이 해안에 들어서면서 바다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어 바다에 의지해 살아가는 해녀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잠수할때마다 두통약-감기약 먹어”▼

“힘들고 고단하지만 한 달 생활비를 벌 수 있어 그런대로 견딜 만합니다.”

제주지역 최연소 해녀인 장지숙(29·제주 북제주군 조천읍 북촌리·사진) 씨. 외할머니, 어머니에 이어 3대째 ‘물질’을 하고 있다.

장 씨는 “처음 물질을 할 때는 주변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 해녀를 하느냐’는 눈길을 보내는 것만 같아 주눅이 들었지만 이제는 물질의 애환을 친구들에게 들려줄 정도로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장 씨가 어머니(60)와 남편(34)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촌계에 가입해해녀를 업으로 삼은 것은 4년 전.

여느 해녀와 마찬가지로 장 씨도 잠수하기 전에 두통약, 감기약을 매번 먹는다. 행여 감기증세가 나타나면 수압 등으로 인해 작업 도중 코피를 흘리기 때문이다.

북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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