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진성]‘내신전쟁’ 이대로 둘건가

  • 입력 2005년 3월 24일 18시 26분


지금 고교 교육일선에서는 내신 과외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2008년 새 대입제도 도입으로 달라진 풍경이다. 역대 정권은 고교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절감을 외치면서 교육개혁을 추진했고 그때마다 대학 입시제도가 춤을 추었다. 그러나 과외를 없애려는 노력은 번번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교육의 본질보다 정치논리에 의한 정부의 민감한 대응이 오히려 과외를 키웠다.

한때는 대학 본고사가 주범이라 하여 국어 영어 수학 중심의 본고사를 폐지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대체하더니, 이번에는 수능이 주범이라 하여 2008년부터는 수능 비중을 줄이고 내신 위주의 대입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국 영 수 중심의 ‘소품종 대량 과외 시대’에서 수능 중심의 ‘다품종 과외 시대’를 거쳐 이제는 수능, 내신, 논술, 심층면접의 ‘다품종 대량 과외 시대’를 맞게 된 셈이다. 이는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다품종 대량과외 시대로▼

내신 성적이 대학 입학을 좌우하게 되면 고교에서의 인성교육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내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친구를 이겨야 한다. 여기에 ‘우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보다 우수한 친구가 있으면 헛일이다. 치열한 경쟁 아래서는 우정도 없고 협동과 봉사, 공동체 정신 발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새 대입제도 아래서는 고교 교사들이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야 할 유인체제도 없다. 어차피 우리 학교 학생들이다. 누가 1등급이 되건 큰 관심 없다. 학교 간의 학력 격차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니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학생들을 잘 가르치나 대충 가르치나 마찬가지인데 어떤 교사가 열정을 불태우겠는가.

학교 교사들은 내신 성적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따른 시비를 두려워 한 나머지 본질적인 교육보다 말썽이 나지 않는 문제만 골라 출제함으로써 교육 내용이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또 학생들을 정확히 평가해 성적을 산출하고 관리한다는 것도 보통의 부담이 아니다.

이제는 대학입시도 정보전이다. 교사 개개인을 연구하면 시험문제가 보인다고 한다. 과거 출제한 문제를 입수하여 분석해보면 대강 시험문제를 예상할 수 있다. 학원 학부모 학생 모두가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내신에 관한 정보는 물론 대학에도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 실제 학력 증진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대학 측은 어떻게 나올까. 고교 간 학력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상위권 대학은 가급적 내신의 실질적 반영 비율을 낮추고 논술이나 심층 면접 등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려 할 것이 분명해졌으니 이에 대한 정보전이 치열할 것이다.

교육 국가독점주의와 교육 평등주의가 문제를 이렇게 만들었다. 근원적 해결책은 평준화 정책을 수정해 학생에게 학교 선택권을, 대학에는 학생 선발권을 돌려주는 것이다. 갓길로 가는 입시제도를 본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이미 새 대입 제도안을 국민에게 발표해버렸기 때문에 해법이 어려워졌다. 한번 떠난 기차를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면 전체의 테두리를 크게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학교장 추천제’도 한 방법▼

그런 점에서 내신 제도를 수정해 학교장 추천제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수능과 대학의 논술, 심층 면접의 골격을 유지하되 내신성적은 학교장 추천 대상 학생에 한해 적용하자는 것이다. 나머지 학생에게는 수능이나 논술, 심층 면접을 통해 진학의 길을 열어주게 된다면 3년에 12번 치르게 되는 내신 성적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되지 않겠는가.

김진성 명지대 객원교수·교육공동체시민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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