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기종]로스쿨 늘려야 경쟁력 높아진다

  • 입력 2005년 1월 24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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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로스쿨 도입은 법률 시장 개방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다. 그러나 로스쿨 정원을 둘러싼 법조계와 법학계의 갈등은 이 제도의 성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대학이 주장하는 로스쿨 정원은 법조인들에게는 무리한 요구로 보이는 듯하다.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법조인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사법시험에만 합격하면 법조인으로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는데, 날로 높아가는 경쟁과 개방의 파고 속에 ‘법률 상인’으로 전락하여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많은 법조인들의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경쟁과 개방의 충격을 완화하거나 지연시킬 방법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두 개의 대조적인 사례에 주목하게 되었다. 농업과 영화 산업이 그것이다. 정부는 농업의 경우 시장 개방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우리 농업을 차단하는 데에만 치중했다. 그 결과 우리의 농업 경쟁력은 답보를 거듭했으며, 농민은 여전히 개방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반면 영화 산업에서 채택된 스크린쿼터는 경쟁과 보호를 조화시켜 오늘날 한국 영화가 한류 열풍의 한 진원지가 되게끔 만들었다. 이 제도는 일정 비율의 상영관을 의무적으로 국산 영화에 할애함으로써 다소 흥행성이 떨어지는 국산 영화도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주는 동시에 외국 영화와 경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외국 영화와의 경쟁은 우리 영화인들로 하여금 그 놀라운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는 도전과 기회의 장이 됐다.

법률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00년 6월 한국에 온 미국 로스쿨 학생들이 서울고등법원을 견학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법률 시장 개방으로 인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위의 두 사례 중 어느 쪽을 본받아야 할지는 명백하다. 보호 위주의 정책으로는 법조계를 지킬 수 없다. 보호와 경쟁을 조화시켜 단계적으로 법조인들을 경쟁에 노출시킴으로써 곧 다가올 전면적인 개방 경쟁 체제에 대비해야 한다. 촉박한 개방 일정은 우리 법조인들에게 영화인들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적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당장 힘들긴 하겠지만 로스쿨 정원에 대해서도 법조인들이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로스쿨 정원을 사법시험 합격자 수와 비슷하게 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보호를 위한 보호로, 결국 법조계의 경쟁력을 저해할 것이다. 개방 후의 무한 경쟁 체제에 대비하려면 적어도 현재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보다는 훨씬 많은 정원으로 로스쿨을 출범시키고 단계적으로 요건을 갖춘 모든 대학에 로스쿨을 허용하겠다는 고통스러운 결단이 필요하다. 이 고통은 충분한 대비 없이 완전한 개방 경쟁 체제로 내몰릴 때의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 대신 이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우리 법조인들에게도 영화인들 못지않은 발전적인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기종 안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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