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우리동네가 최고/만석동

  • 입력 2004년 11월 22일 20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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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인천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인천 동구 만석동은 인천에서도 특히 유서 깊은 동네로 손꼽힌다.

달동네 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그린 김중미씨(41)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만석동은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정착하며 생겼다.

만석동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성목재와 동일방직㈜이다.

인천의 목재산업을 이끈 대성목재가 1936년 설립돼 처음 합판을 생산한 곳이 현 만석비치주공아파트 부지였다. 당시 상당수 주민들이 이 회사의 저목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원목에서 벗겨 낸 나무껍질을 내다 팔거나 연료로 사용했다.

1934년 동네 중심지 2만5000평의 부지에 설립돼 한국 섬유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동일방직㈜은 아직도 기계가 돌아간다. 호황을 누릴 때는 1500여명이 근무했지만 섬유산업이 쇠퇴함에 따라 현재는 308명의 직원이 연간 800만km의 면사와 직물 등을 생산하고 있다.

만석동은 바다의 정취도 가득한 동네다. 만석부두에는 89척의 낚싯배와 어선들이 드나들고 있다. 배를 타고 인천 앞바다에 나가 낚시를 할 수 있으며 일부 어선은 숭어와 우럭, 농어 등을 잡아 횟집에 내다 판다. 만석동은 9300여명의 주민 가운데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421명으로 동구에서 가장 많은 극빈층이 살고 있지만 주민들의 마음은 한없이 따뜻하다.

이웃의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면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벌이는 동네로 인천에서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4살짜리 아이가 암에 걸려 투병하자 주민들이 모금운동을 벌이며 쾌유를 빌었지만 결국 아이가 숨져 온 동네가 슬픔에 잠겼었다.

송일웅 주민자치위원장(59)은 “많은 곡식을 가진 부자가 되라는 뜻에서 동네이름을 ‘만석동(萬石洞)’이라고 붙인 것 같다”며 “생활 형편은 대부분 어렵지만 나보다 더 가난한 이웃을 돕는, 마음이 ‘부자’인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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