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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14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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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의한 일련의 ‘사법 무시’ 행태가 일반 국민에게 번지면서 전반적인 재판 불복과 사법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풍조는 단순한 사법의 위기를 넘어 체제와 국가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직 공무원에게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해 항소를 기각하자 피고인이 갑자기 “내가 왜 유죄냐”며 고함을 질렀다. 방청석의 가족 3, 4명도 “재판 똑바로 해”라고 재판부를 향해 소리쳤다.
같은 날 열린우리당 이목희(李穆熙)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에 대해 “국민과 국회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한 사법쿠데타”라고 비난했다.
일부 열린우리당 의원과 친여 단체들은 위헌 결정 이후 헌재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일반인들의 법정소란과 재판부 비난도 이제 흔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지난달 초부터 이달 12일까지 법정소란으로 청원경찰이 출동한 사례가 15건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단순 항의나 재판부 모욕까지 합하면 법정소란이 매일 1, 2건씩 발생한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조직폭력사건이나 시국공안사건 재판에서 간혹 있던 법정소란이 이제 정치인 재판에서는 흔한 일이 됐고 일반 형사 민사 가사사건에까지 급속히 번지고 있다는 것.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관은 국민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아 판결을 하는데 정치인들이 그 판결에 반발하고 사법부를 모독하는 것은 결국 국민에게 저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국대 법대 문재완(文在完·헌법학) 교수는 “정치권이 정치적 이해나 정략에 따라 사법부 판결을 비난하면서 일반 국민에게 ‘학습효과’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국민과 국가가 합의한 분쟁 해결 시스템인 사법에 대한 불신과 무시 풍조는 사법의 위기를 넘어 체제와 국가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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