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시각장애 1급 이윤동씨, 한자1급 자격시험 합격

  • 입력 2004년 11월 1일 18시 24분


코멘트
1급 한자능력시험에 합격한 1급 시각장애인 이윤동씨(왼쪽)가 12월 결혼할 예정인 박순옥씨의 손을 꼭 잡고 있다.-울산=조이영기자
1급 한자능력시험에 합격한 1급 시각장애인 이윤동씨(왼쪽)가 12월 결혼할 예정인 박순옥씨의 손을 꼭 잡고 있다.-울산=조이영기자
“눈으로 글자를 ‘마신’ 뒤 모니터에 손가락을 대고 한자를 따라 쓰면서 공부했죠.”

최근 한자급수자격검정회가 주최한 한자능력시험(1급)에 1급 시각장애인인 이윤동씨(47·울산 남구 신정동)가 합격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씨는 오른쪽 눈의 시력이 0.04이고 왼쪽 눈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그는 21인치 컴퓨터 모니터에서 72포인트(가로 세로 약 3cm 크기)로 확대한 글자를 읽는다. 글자에 눈을 가까이 댄 뒤 마치 숨을 들이마시듯 눈으로 글자를 익힌다는 것.

한자능력시험 1급은 3500자의 한자를 막힘없이 읽고 쓸 수 있는 수준으로 보통 사람들은 좀처럼 도달하기 어렵다.

이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친구가 던진 책의 모서리에 왼쪽 눈을 맞아 시력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수술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눈마저 잘 보이지 않게 됐다.

“24세 때인 어느 날, 늘 그렇듯이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대학에 진학한 서울맹학교 학생 인터뷰를 듣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4년간 공부에 매달린 끝에 1980년 고입과 고졸 검정고시에 잇달아 붙었고 경북대 사학과 합격증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남은 시력마저 잃게 하고 싶지 않다”며 공부를 만류해 안마와 지압을 배운 뒤 침술원을 운영해 왔다.

그런 그가 뒤늦게 한자공부에 도전하게 된 데는 올해 초 지인의 소개로 만난 박순옥씨(48·여)의 도움이 컸다. 박씨는 “당신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격려하면서 매일 이씨가 공부할 한자를 e메일로 보내줬다.

어렵고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애쓰는 이씨의 모습에 박씨는 “당신의 눈이 되고 싶다”고 고백했고 이들은 남은 인생을 함께 하기 위해 12월 결혼할 예정이다.

울산=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