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산 노루 때문에 한해 농사 망쳐요”

  • 입력 2004년 9월 3일 21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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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산간 경작지에서 한라산 야생 노루와 농민들 사이에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라산 고지대에서 내려온 노루들이 농작물을 뜯어먹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농민들이 그물망을 설치하는 등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

북제주군 애월읍 소길리 3000평의 밭에서 감자를 경작하고 있는 강안일씨(52)는 “최근 밭에 나가보면 노루 발자국이 수없이 찍혀있고 감자 잎이 뜯겨져 있다”며 “농사를 망칠 형편이지만 애만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노루들은 감자 고구마 콩 배추 더덕 등 주로 잎이 부드러운 작물을 뜯어 먹는다.

노루가 농작물에 피해를 준 면적은 2000년 159ha, 2003년 260ha 등으로 증가하고 있다.

노루 피해로 인한 농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자 제주도는 맹수 배설물이 담긴 약품을 수입해 밭 주변에 뿌렸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고 최근에는 울타리용 그물망을 농가에 지원하고 있다.

북제주군 한경면 현영석씨(48)는 “3500평의 감자 밭에 2∼4m 높이로 그물망을 설치했으나 여기를 뛰어 넘어 밭에 들어오는 노루가 있다”며 “농작물에 해를 주는 노루를 생포해 적당한 지역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라산국립공원부설 한라산연구소 오장근 박사는 “저지대 농작물의 맛을 알게 된 노루들이 밭 주변 오름(기생화산을 뜻하는 제주방언)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며 “노루의 개체수와 적정 서식밀도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뒤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주의 야생 노루는 한때 멸종됐다는 이야기가 나돌다가 지난 1980년대 하나 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1990년대 제주 전역에 걸쳐 전개된 보호운동으로 노루 수가 급격히 증가해 현재 3000여 마리로 추정되고 있다.

임재영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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