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괴로워… 불황속 주5일제

  • 입력 2004년 8월 19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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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불황이 직장 풍토를 바꾸고 있다. 특히 주5일 근무제가 실시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자구책이 잇따르면서 직장인들의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가 더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일 서울디지털대학교 노동연구소가 주5일제를 실시하는 서울 소재 기업 직장인 1046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0.5%가 평일 야근이 늘어나고 출근시간이 앞당겨지는 등 업무가 더 힘들어졌다고 답했다.》

▽“직장인인지 수험생인지”=서울의 대기업에 근무하는 A씨(31)는 요즘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회사 현관과 복도에 달려 있는 폐쇄회로TV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고 있기 때문.

지각은 물론이고 업무시간에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무사히 넘어갈 수 없다.

A씨는 “지각하는 모습을 찍힌 사진이 위에 보고된다는 소문이 돌아 직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며 “인사부 직원에게 적발돼 ‘한번 봐달라’고 하소연하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라고 털어놨다.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도 지난달 인사부원을 현관에 배치해 놓고 명찰 복장 및 두발 상태를 단속해 그 결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했다가 직원들의 반발에 부닥쳐 중단한 바 있다.

한 홈쇼핑업체는 매달 ‘환경미화’ 검사를 실시해 부서별로 등수를 매긴 뒤 이를 공지한다. 책상정리 상태를 비롯해 사무실 분위기가 쾌적한지, 쓰레기통은 잘 비우는지 등이 평가 대상. 꼴찌 부서는 사장에게서 직접 야단을 맞게 된다.

이 회사 직원 박모씨(31)는 “경기불황이 이어지면서 사내에 감원설이 나돌고 있다”며 “이 와중에 청소검사에서 찍혀 불이익을 당할까봐 다들 조마조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활동’도 제한을 받고 있다.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이모씨(26)는 “불경기에 노조 가입을 은근히 막는 듯한 사내교육을 하는 통에 신입사원들이 아무도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밥값이 얼마나 한다고”=서울 강남의 한 벤처회사에 근무하는 정모씨(26)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저녁식사 값으로 무조건 5000원씩 지급돼 왔으나 두 달 전부터 실비만 지급되고 있기 때문. 이마저도 영수증을 매번 청구해야 하고 액수가 5000원이 넘으면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자동차부품업체에 근무하는 이모씨(35)는 “지난달부터 휴대전화 보조비와 차량유지비가 없어졌고 접대비도 부서장 전결에서 사장 결재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신용카드 등 자사 제품의 판매를 사무직 직원들에게 강제로 할당하는 모습은 이제 보편적인 현상.

여의도의 한 보험회사는 직원들에게 지난해 분기당 50만원씩 고객 적금을 유치하도록 했지만 올해는 그 액수를 300만원으로 늘렸다.

이 회사에 근무하는 김모씨(27)는 “어려운 건 알겠지만 강제 할당으로 본업은 아예 뒷전이 돼 버렸다”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자폭(자기 돈으로 할당량을 채우는 것)’하는 직장인들도 주위에 많다”고 하소연했다.

서울디지털대학교 노동연구소 이정식 교수는 “사생활 간섭이나 이른 출근, 야근을 통한 근무시간 연장은 구시대적인 통제방식”이라며 “주5일제와 경기불황 등으로 노동 강도가 세질 수는 있지만 지나칠 경우 오히려 효율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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