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5년 히로시마 原爆 투하

  • 입력 2004년 8월 5일 18시 52분


그 가혹한 운명의 날은 무더웠다.

1945년 8월 6일. 서태평양 티니언섬을 떠난 B-29 폭격기가 일본 히로시마에 모습을 나타내자 요란하게 공습경보가 울렸다.

오전 8시15분. 9600m 상공에서 원폭(原爆)이 투하됐다. 무게 4t의 ‘리틀 보이’는 TNT 폭약 1만5000t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섬광이 비치면서 거대한 연기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이글거리던 화염의 붉은 핵이 거센 불길을 내뿜자 천지는 광란했다.

기장인 폴 티베트 대령은 순간 입속에 확 끼치는 ‘납 냄새’를 맡았다. 핵분열이 내는 ‘빛의 맛’이었다.

“오, 주여!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이까….”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잿더미에 묻혔다. 원폭이 핥고 간 도시는 그저 폐허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뼈와 살이 녹아 너덜거리는 팔을 축 늘어뜨린 사람들이 유령처럼 삶과 죽음 사이를 떠돌았다.

시체는 숯처럼 새까맸다. ‘구워진’ 사람은 아주 작았다.

살아남은 자들(‘히바쿠샤’)의 고통은 컸다. 그들은 서서히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이유 없이 코피가 터졌고 머리카락이 빠졌다. 여기저기 홍반(紅斑)이 생겨났다. ‘죽음의 반점’이었다.

피는 더 이상 응고되지 않았다.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보는 것도 힘들었다.

“히로시마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즉각 항복하지 않았다. 원폭 투하 사실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방송을 통해 단지 “신형 폭탄이 투하되었다”고만 알렸다.

워싱턴은 히로시마의 참상에 충격을 받았다. “암흑의 시대가 오고야 말았다!”

그러나 트루먼은 단호했다. “곧 두 번째 원폭이 투하될 것이고 항복하지 않으면 제3, 제4의 폭탄을 퍼부을 것이다.”

히로시마는 원폭 투하로 모두 14만명이 숨졌다. 7만명이 즉사했고 그해가 가기 전에 7만명이 사망했다. 35만명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순교자’는 아니다. 엄연한 전쟁의 가해자다.

그러나 히로시마의 체험은 “인류와 핵무기는 공존할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비극의 땅’ 히로시마는 우리 세기에 평화와 반전의 화두(話頭)를 던지고 있다.

노 모어 히로시마(No More Hirosimas)!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