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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27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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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은행 서울 강남지역 지점 대부계에 근무하던 A씨는 1998년 12월 투자상담을 요청해 커피숍에서 만난 정모 여인(당시 27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상당한 미모의 정씨는 처음 만난 A씨에게 다짜고짜 “국제 환치기 조직원 권모씨의 검거를 위해 입국한 FBI 수사관”이라며 “권씨 명의 계좌에 3억2000만원을 입금하라”고 요구했다.
돈이 계좌에 입금되면 권씨가 자신에게 연락을 취해올 것이고, 그때 권씨를 체포하고 돈을 돌려줄 테니 ‘공작비’를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A씨는 정씨에게 신분증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지만 정씨는 엉뚱하게 A씨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뒤 수면제를 탄 양주를 먹이고 하룻밤을 보내게 했다. 다음날 A씨는 지난밤 성관계가 있었던 것처럼 압력을 가해 오는 정씨에게 은행돈 3억2000만원을 건넸다.
정씨는 A씨에게서 돈을 건네받은 직후 미국으로 도피했으나 현지에서 수표 위조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올 1월 한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정씨는 입국하자마자 경찰에 체포돼 구속영장이 신청됐지만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풀려났다.
그 후 5개월간 보강조사를 벌인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성시웅·成始雄)는 25일 정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정씨는 A씨에게서 돈을 가로챈 혐의 이외에도 1996년 10월∼1997년 1월 재벌2세 행세를 하며 B씨에게 접근해 49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씨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고 검찰은 전했다. 하지만 검찰은 보강조사에서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한편 은행원 A씨는 이 사건이 문제가 돼 사직한 뒤 “강요에 의한 사직”이라며 은행을 상대로 해고무효 소송을 냈으나 1,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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