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은 이회창씨 요구에 답하라

  • 입력 2004년 3월 10일 18시 52분


이 나라에는 지금 스스로 범죄사실을 시인하고 사법처리를 요구하는데도 수사 소추기관이 묵묵부답인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는 불법 대선자금 모금은 자신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기자회견을 통해 ‘자백’하고 검찰에 사법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검찰은 이씨의 요구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불법 대선자금을 거두어 사용한 책임의 꼭대기에는 대통령후보가 있다. 하수인에 해당하는 당 재정 관계자와 측근들을 구속하고 ‘주범급’은 조사조차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불법 대선자금 모금에 관여하거나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람은 정파와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엄정하게 사법처리 돼야 한다.

다만 헌법상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형사소추를 당하지 않는 특권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일반 국민의 법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조치로 임기 중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 따라서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임기가 끝난 후 소추를 하면 된다.

이씨는 이러한 형사상 특권을 갖고 있지 않다. 불법 대선자금은 피의자가 요구한다고 해서 처벌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더욱이 823억여원에 달하는 불법자금이지 않은가.

이씨는 검찰이 노 대통령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자신의 사법처리를 연기하는 것은 정치적 계산이라고 비난했다. 그의 말대로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정치적 고려에 의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검찰은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사와 소추를 하면 된다. 대선의 승자와 패자 모두 이를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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