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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20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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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생 문화는 지방 출신의 서울 정착기 또는 생존기라고 할 만하다. 지방 출신으로 서울의 대학을 나오고 서울에 정착한 사람들이 서울살이를 처음 시작하는 곳이 대학 동네다. 서울대 인근 신림동,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홍익대가 있는 신촌 일대, 고려대 앞 안암동 제기동에는 예나 지금이나 지방학생들에게 방을 세주거나 하숙을 쳐 먹고사는 집들이 많다. 지금은 서울의 대학가에 원룸텔이 넘쳐난다지만 과거에는 연탄을 때던 낡은 단독주택이 하숙집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대학촌의 서울 유학생들에게는 매달 한 번씩 집에서 돈이 올라온다. 등록금은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날 들고 상경하지만 하숙비 책값 용돈은 다달이 송금된다. 하숙생들 사이에서는 그것을 ‘향토장학금’이라고 불렀다. ‘고향의 부모들이 소 돼지와 쌀을 팔아 보내주는 돈’이라는 의미다. 우리네 살림살이가 어려울 때라 ‘향토장학금’이 늘 빠듯해 모자라는 돈은 아르바이트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서울의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시골에서 소 팔아 보내준 돈으로 쌓은 대학 건물이라는 뜻이다. 우골탑이 부정적 의미를 지닌 데 비해 ‘향토장학금’은 고향과 부모, 서울 유학의 추억이 어려 있는 조어(造語)다. 안희정씨가 재판을 받으며 기업인들에게서 받은 4억원을 ‘향토장학금’ 정도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충남 논산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386세대에까지 ‘향토장학금’이라는 말이 전해 내려오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가 받은 돈을 ‘향토장학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돈과 권력의 유착이 내뿜는 악취가 난다. ‘향토장학금’의 애틋한 추억에 상처를 입힌 말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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