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과학교사 모임 “과학대중화 위해 교실밖 나왔어요”

  • 입력 2004년 1월 16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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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장 입구에 모인 ‘재미있는 물리를 하는 사람들’. 오른쪽은 임용규 회장, 왼쪽에서 두번째는 자문역을 맡은 포항공대 김승환 교수. -포항=이권효기자
강연장 입구에 모인 ‘재미있는 물리를 하는 사람들’. 오른쪽은 임용규 회장, 왼쪽에서 두번째는 자문역을 맡은 포항공대 김승환 교수. -포항=이권효기자
“과학기술의 미래를 위해선 과학교사들부터 달라져야죠.”

14일 오후 8시 포항공대 정보통신연구소 강당 300석은 부모와 함께 온 청소년들로 꽉 찼다. 이들은 이날 90분 동안 ‘블랙홀’에 대한 강연을 들으며 평소 품었던 의문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이날 강사는 경북대 천문대기과학과 박명구(朴明九) 교수. 박 교수는 ‘재미있는 물리를 하는 사람들(APC·Amusing Physics Club)’이란 모임의 초청으로 이날 강연을 했다.

이 모임은 지난해 7월 만들어진 경북 포항시 과학 담당 초중고교 교사들의 단체. 교사들은 자연과학과 공학기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교실 밖으로 나왔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지가 20년이 지났습니다. 갈수록 학생들을 마주하기가 미안했어요. 해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가르치는 게 아닌가, 교사 때문에 학생들이 과학을 더 싫어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APC 회장 임용규(林容圭·45·경북과학고) 교사의 말이다. 뜻을 같이한 과학교사 50여명은 포항공대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청했다. 과학기술의 새로운 흐름을 공부하고 포항공대의 우수한 실험실습용 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포항공대측은 기꺼이 이들의 요청에 응했다. 교사들이 언제든지 대학 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교수뿐만 아니라 직원들까지 도왔다.

교사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공부를 거듭하는 한편 과학기술과 대중을 연결하기 위한 1년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날 강의는 이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강연을 한 박 교수는 “학생들이 추운 날씨에도 강당을 메울 정도로 과학에 관심이 많은 줄 몰랐다”면서 “과학이 청소년과 대중에게 더 친절한 모습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데리고 강연에 참석한 주부 박훈숙(朴薰淑·39·경북 포항시 남구 지곡동)씨는 “종종 딸아이에게 과학행사에 참여하는 기회를 만들어주니 과학에 대한 태도가 아주 달라졌다”고 말했다.

APC 모임을 함께 만든 포항공대 김승환(金昇煥·45·물리학) 교수는 “독일이나 일본 등지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과학 대중화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도 싹을 틔우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한국물리학회는 APC 활동을 부산 청주 등지로 확산시켜 과학 대중화의 모델로 만들 생각이다.

포항=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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