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이인호/大入제도 ‘요행’을 없애자

  • 입력 2003년 12월 7일 18시 20분


코멘트
대학 신입생 정시모집이 시작되고 수시모집 예비합격자들의 상당수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미달로 탈락하면서 온 나라가 또다시 입시 문제로 들끓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엄청난 사회적 소모와 불신을 낳는 복잡한 선발제도에 시달려야 하는가.

진정으로 교육과 나라의 장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눈치작전 ‘억울한 탈락’도 많아 ▼

대학들이 요구하는 자율적 학생 선발권과 실력에 따라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진학할 수 있는 수험생들의 선택권을 함께 존중해 교육 원리에 맞게 절충하고, 학생 선발과정에서 요행의 변수를 철저하게 배제함으로써 수험생들을 학습부담 이외의 불필요한 심리적 압박감에서 해방시키는 동시에, 대학 간에는 발전적 경쟁과 특화가 이뤄지게 하는 것이 이 제안의 골자다.

편견과 욕심만 버리면 시행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신입생 선발은 수시모집 대신 특차와 일반전형 두 단계로 국한하고, 일반전형의 핵심 자료로는 교육과정에 들어가 있는 필수와 선택과목 전반에 대한 종합시험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졸업자격시험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그 시험의 방법, 횟수 등에 관한 논의는 별도로 이뤄져야 할 것이지만 교육과정과 동떨어진 수능시험은 정상교육과 입시교육의 이원화라는 부정적 결과를 낳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특차 지원과 선발도 종합시험의 성적과 석차가 학생 개개인에게 통보된 후 시작한다. 특차 응모 기회는 한 해에 한 대학으로 제한하고 특차에 합격한 수험생은 같은 해에는 일반전형에 참여할 수 없게 함으로써 소신지원을 유도한다.

각 대학은 여러 형태의 시험성적이나 인품, 특기, 그 밖에 대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요소 등 다양한 평가 척도를 개발하고 활용함으로써 대학의 설립취지를 살리는 동시에 중·고등학교 교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한다. 특차 모집 비율은 점차 대학 자율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지만 처음에는 일반전형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 50%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일반전형의 목표는 국가가 권장하는 교과과정에 따라 훌륭한 성과를 거둔 학생들에게는 성적순으로 진로 선택의 권리를 보장해줌으로써 중·고등학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 젊은이들이 일찍부터 억울하게 탈락하는 경험을 해 사회를 불신하게 되고 재수생이 다수 발생하는 폐단을 방지하는 데에 둬야 한다.

여기에서 제안하는 일반전형의 새로운 특징은 지원과 선발을 특차처럼 대학별로 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단과대학 정도로 분류되는 진학 계열별로 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성적이 아니라 소망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도록 지도받고 계열별로 선택과목을 달리하는 졸업종합시험을 치르도록 하며 자기가 선택한 계열에 속한 모든 대학의 모든 학과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곳을 선택해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성적순으로 보장받게 된다.

예를 들어 A대 영문과가 1지망이었던 인문계 학생은 그 과의 정원이 다 찼으면 B대 영문과나 A대 사학과를 2지망, 3지망으로 선택할 수가 있으나 문과 계열에서 법과 계열로 이동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커트라인을 미리 추측할 필요도 드러낼 필요도 없고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유동적이 된다.

▼대학 아닌 계열별지원 어떨까 ▼

요행의 작용이 배제되는 이 제도가 정착되면 대학 진학 가망이 크지 않은 학생들은 일찍부터 취업이나 직업전문학교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고 경쟁력이 약한 대학들도 사회적 수요가 더 큰 다른 종류의 교육기관으로 전환을 모색하리라는 것이 이 제안에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다.

우리의 사교육비 부담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은 순전히 입시제도 때문만은 아니고 학생과 학부모의 차등적 학업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평준화된 교실 탓이 더 크다. 그러나 미세한 성적차이로 당락이 결정되지 않고 단지 선택의 순위만이 결정되는 것이 확실해진다면 사교육 의존도는 크게 줄어들 것이 틀림없다.

이인호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