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거물공작원’ 송두율]학문적 업적에 대한 평가

  • 입력 2003년 10월 1일 18시 46분


윤평중 교수(한신대·철학)
윤평중 교수(한신대·철학)
▼비판…내부비판 없는 北체제▼

모든 학문적 이론은 처음에는 현상을 설명하는 가설로 제시된다. 그 가설이 현실을 해명하고 경험적으로 입증될 때 비로소 하나의 이론으로 승격된다. 학문의 이런 재생산 과정에는 끝이 없다. 바꿔 말하면 각고의 노력 끝에 이론의 자리에 이른 학설도 언제든지 그 위치를 상실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이런 개방성이야말로 학문의 역사를 빛나게 한 동인(動因)이다.

모든 이론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내재적 접근법은 ‘사회주의가 무엇을 지향하며, 그 목적을 실제 어떻게 얼마나 달성했는가를 사회주의 스스로 이야기하게 하는 이론’이다. 이로써 사회주의 체제를 전체주의 국가로만 규정했던 냉전 반공주의적 시각의 일면성이 폭로됐다. 나아가 북한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냉전의식을 완화시키는 데도 전향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내재적 접근법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약점은 북한 사회주의와 관련해 드러난다. 왜냐하면 체제 정당화 이데올로기로서 정립된 주체사상은 내부 비판과 자기 수정의 여지를 차단함으로써 현실과의 정직한 대면에 입각한 이론의 재생산 과정을 원천적으로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구소련과 중국 사회주의의 이념이 일정한 자기 수정 능력을 지녔던 것과도 대비되는 대목이다.

내재적 접근법은 경험적 이론임을 자처하며 냉전 반공주의를 ‘선험적 이론’이라고 규탄한다. 그러나 인민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핵심으로 삼아 ‘모두 같이 몸 바쳐 일하고 화목하게 잘 사는 사회’를 이룩한다는 주체 사회주의의 아름다운 목표는 북한의 현실에 의해 처절히 배반당했다. 그리고 그런 총체적 실패의 싹은 주체사상 안에 이미 내장(內藏)되어 있는 것이다.

북한을 내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북한 인민들이 겪고 있는 최악의 대량 기아 사태와 수령 무오류설의 처참한 대비에 의해 치명타를 맞는다. 왜냐하면 ‘고난의 행군’이란 정치적 수사가 이런 인륜적 비극을 결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재적 접근법은 경험적 이론이란 자기 규정에 의해 스스로 난파당하게 될 처지에 직면하고 만 것이다.

윤평중 교수 한신대·철학

▼지지…반공주의 비판서 탈피▼

손호철 교수(서강대·정치학)

과거 아프리카를 여행한 서구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이들의 문화를 보며 ‘야만’이 지배하는 현실에 충격을 받곤 했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이 같은 인식은 서구중심주의의 반영이며, 아프리카의 문화를 서구의 기준에 의해 평가하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우리는 ‘문화적 상대주의’라고 부르며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중요한 학문적 기여로 평가하고 있다.

송두율 교수가 80년대 북한연구를 위해 주장한 ‘내재적 접근법’이란 주장 역시 정확히 문화적 상대주의와 유사한 문제의식에 기초한 중요한 학문적 기여다. 즉, 북한사회를 객관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잣대가 아니라 북한의 작동원리와 가치체계를 알고 이에 기초해 북한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 같은 내재적 접근법을 따를 경우 문화적 상대주의와 마찬가지로 상대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비판이 불가능하고, ‘사실상 존재하는 것은 모두 정당하다’는 논리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송 교수가 내재적 접근법을 제기한 역사적 맥락, 이론사적 맥락이다. 당시 우리 사회는 북한에 대한 비판은 과잉이고 이해는 부재한 상황이었다. 특히 아프리카를 야만이라고 경멸했던 서구인들처럼, 우리의 기준에 의한 북한 비판은 흘러 넘쳤지만 북한을 북한의 눈으로 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재했다.

이 같은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송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을 이렇다 저렇다 논하는 것은 잘못이다. 즉, 북한의 눈에서 북한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그간의 반공주의 일변도의 북한연구를 반대로 휨으로써 북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북한에 대한 연구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송 교수의 학문적 기여이다.

나아가 송 교수는 최근 들어 내재적 접근법을 넘어 포스트모더니즘 등에서 논의하는 ‘타자의 철학(나와 타자는 사실상 처음부터 연결돼 있다는 철학)’이란 시각을 한반도에 적용해 남북한 문제를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바, 이 역시 중요한 기여이다.

손호철 교수 서강대·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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