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3년 8월 11일 18시 3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무모한 모험, 이념갈등 부채질▼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미군 훈련장 난입과 장갑차 점거시위는 매우 무모하고 무책임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북핵 위기의 해법을 찾기 위한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고, 우리 사회 내부의 이념적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에 극단적인 과격행동을 보인 것이다. 한총련의 이번 행동은 북핵 해법과 주한 미군 재배치를 둘러싼 대미협상에서 한국 정부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대내적으로 이념적 갈등과 대립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이는 한미관계의 신뢰 회복과 한총련 합법화를 위해 노력해온 노무현 정부를 매우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다.
한총련의 무모한 과격성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첫째, 철저한 반미주의 이념의 소산이다. 한총련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한반도의 안정을 해치고 민족 통일을 가로막는 원흉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시위에서도 한총련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획책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미군 철수를 외쳤다.
사실 반미 정서는 우리 사회 내부에 비교적 넓게 퍼져 있다. 50년간 지속돼온 한미동맹의 부작용과 우리의 국력 신장 및 민주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미관계가 더 수평적인 관계로 재정립돼야 한다는 주장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한국인들은 한국이 처한 안보적 경제적 현실을 고려해 한미관계가 점진적으로 조정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한총련의 과격한 반미행동은 이념적 갈등을 악화시킬 따름이다.
둘째, 친북 노선에 따른 대북 유화정책에 대한 신념 때문이다. 한총련은 북한과의 화해 협력이 한민족의 자주성을 고양시키고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제거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한총련이 한나라당을 반통일 세력으로 규정하고 최근 한나라당의 지구당들을 공격하는 이른바 ‘타격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모든 한국인의 소원은 통일이다. 그리고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이 개혁 개방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 대북정책의 목표는 북한을 개혁 개방의 길로 유도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 내부에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극심한 이념적 대립이 존재한다. 따져 보면 이러한 이념적 대립의 근원은 어떻게 하면 북한을 개혁 개방의 길로 유도할 것인가 하는 대북전략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보세력은 한국의 대북 유화정책, 대북 지원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것이라고 믿는 반면, 보수세력은 대북 강경정책, 대북 압박이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독일의 경험은 안보정책(NATO)과 포용정책(동방정책)이 모두 필요함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양 세력은 서로를 반통일 세력으로 매도하기에 급급하다.
▼盧정부 유화조치 성과 못거둬▼
한총련의 무모한 행동에 대하여 정부는 일단 강경한 대응방침을 천명하고 나왔다. 시위 참가자들과 배후 세력을 엄벌하고 한총련 합법화 문제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 대해서도 관련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참여정부가 취한 일련의 대(對)한총련 유화조치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6월 법무장관은 한총련의 합법화 문제는 한총련의 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7월에는 검찰이 다수의 한총련 수배자들을 불구속기소하는 유화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한총련은 5·18 국립5·18묘지 시위와 7·25 미군부대 시위에 이어 8·7 장갑차 점거시위를 통해 정부의 유화조치에 호응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과격한 노선을 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총련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우리 사회 내부의 이념적 갈등과 한미관계의 신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지역학부 교수·정치학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