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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6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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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연구공원 창업보육센터에서 직원 6명을 둔 환경기업 ‘이코바이오’를 꾸려가고 있는 강석준(姜錫駿·61)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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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7년 갑자기 닥친 외환위기 ‘한파’를 맞아 30년간 시멘트 회사에서 일하며 모은 전 재산을 날렸다. 그가 보증을 서준 친구의 회사가 130억원의 부도를 내는 바람에 95년 퇴직금 1억원을 투자해 만든 작은 회사(시멘트재료 생산)와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49평 아파트를 순식간에 날려 버린 것.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시련=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 자동차회사에 다니던 아들(당시 28세)과 건설회사에 다니던 딸(당시 25세)마저 직장을 잃었다.
강씨는 “하루는 아내가 허드렛일을 나간 사이 점심을 준비하던 아들이 ‘아빠, 라면도 떨어졌어요’라고 말하는데, 가장(家長)으로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함을 느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당시 그에게는 절망과 좌절뿐이었다. 가족을 볼 면목이 없어 그해 한겨울에 얼어 죽을 작정으로 인적이 드문 산으로 올라가 가랑잎을 긁어모아 덮고 소주를 3병이나 마신 채 잠을 청한 적도 몇 차례나 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매일 ‘죽어야지’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거든요.”
▽재기를 꿈꾸며=98년 초 우연히 만난 지인으로부터 염치없이 국밥을 두 그릇이나 얻어먹으며 속울음을 삼킨 강씨는 생각을 바꿨다.
“‘죽기밖에 더 하겠나. 한 번 더 해보자’는 생각이 정수리를 쳤습니다. 그제서야 모시고 있던 아버님과 가족들의 생계가 눈앞에 떠오르더군요.”
그 후 강씨는 매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출근했다. 돈이 없어 점심을 굶어가며 전공인 화학공학 분야를 살려 살균기능이 있는 ‘은가루’ 연구에 매달렸다.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집에 있던 그릇을 실험도구로 삼았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는 결국 2000년경 냉각탑이나 가습기 등의 물속 세균을 죽일 수 있는 ‘은가루를 입힌 세라믹 공(球)’이란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고 곧바로 특허 출원을 했다. 그렇게 3년 6개월을 보낸 뒤 59세가 되던 2001년 8월에 한 투자자를 만나 서울대 연구공원에 회사를 차렸다.
▽근황 및 조언=강씨는 2월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세계냉각기술협회 연차총회에서 관련 기술을 발표해 호평을 받았고, 지금은 국내 대기업의 가습기 회사에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강씨는 요즘도 시간이 아까워 4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는다. 요즘은 반도체 웨이퍼나 화장품, 의약품 소재로 쓰이는 실리카를 왕겨에서 추출해 상업화하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고 생물이 달라붙지 않는 선박용 페인트도 개발 중이다.
강씨는 자살을 기도했던 고난의 시절을 회상하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빠져 들기 쉬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해보니 길이 열리더군요. 타고난 건강체질 덕도 봤지만 그보다는 정신력이 중요합니다. 기회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기억들은 잊으려고 노력하십시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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