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루업체, 7급공무원 회유 안통하자 4급에 압력

입력 2003-06-18 18:31수정 2009-09-2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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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살려는 아랫물을 더러운 윗물이 망쳐놓다니….”

18일 직무유기 및 공용서류 무효 혐의로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구속된 서울지방국세청 7급 공무원 나모씨(45)는 경찰조사를 받는 동안 줄곧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씨의 혐의는 지난해 4월 특별세무조사를 받던 I벤처회사에 대한 탈루 사실을 눈감아 줬다는 것.

그러나 조사를 마친 경찰관계자는 “부정한 ‘윗물’이 깨끗한 ‘아랫물’을 더럽혔다”며 혀를 찼다.

강남세무서 조사반장이던 나씨가 I사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나선 것은 지난해 4월. 이 회사 서모 사장(41)이 해외골프 여행과 과다한 신용카드 사용으로 국세청의 특별조사 대상자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나씨는 조사 도중 이 회사가 코스닥 등록을 위해 허위로 매출을 늘리고 접대비를 직원복리후생비로 용도 변경한 사실을 적발했다.

당시 서 사장은 나씨에게 “잘 봐주면 5000만원을 주겠다”며 회유했으나 나씨는 되레 “당신이 왜 세무조사를 받는지 모르느냐. 도대체 제정신이냐”고 호통을 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나씨의 대쪽 소신은 상사에 의해 좌절됐다.

서 사장이 당시 강남세무서장이던 기모씨(54·현 국세청 과장)에게 500만원을 주고 압력을 넣도록 청탁한 것.

기씨는 나씨를 자기 방으로 불러 “아는 사이니 잘 봐줘라”며 압력을 넣었고 결국 이를 이기지 못한 나씨는 보고서에 I사가 허위로 매출을 부풀린 사실은 빼버렸다.

경찰관계자는 “서장의 부탁을 안 들어주면 불이익은 물론 평생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세무서 분위기상 나씨가 거절을 하지 못했다”며 “돈 한 푼 받지 않은 나씨가 직무유기로 구속된 것은 더러운 ‘윗물’ 탓”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관계자는 “나씨는 공무원 봉급으로 장애인인 동생과 홀어머니 살림까지 챙기느라 빚까지 지며 생활하는 상태”라며 “어려워도 깨끗하게 살려는 하급직 공무원을 고위직이 망쳐놓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은 이날 코스닥 등록을 위해 매출액을 부풀리고 뇌물을 제공한 I벤처회사 서 사장을 뇌물공여혐의로, 500여만원을 받고 부하 직원에게 압력을 행사한 기씨는 직권남용 및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의 뇌물 비리는 경찰이 이 회사에 대한 납품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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