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안수 받은 한세대 총장 김성혜 총장

  • 입력 2003년 5월 30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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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교인 5명이 천막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한 여의도 순복음교회. 개척자인 조용기 목사의 카리스마 넘치는 설교와 성령을 강조하는 목회철학으로 이제는 등록 교인만 70만명을 헤아리는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다. 순복음교회를 통해 배출된 제자 목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개척한 교회와 기도처는 300여개, 교인은 130여만명에 이른다.

조 목사의 부인인 김성혜(金聖惠·61) 한세대 총장은 어머니 최자실 목사(1989년 작고)와 함께 오늘의 순복음교회를 일군 ‘1등 창업공신’이다. 언론과 거의 인터뷰를 하지 않는 그를 2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11층 그레이스홀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조 목사를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때. 조 목사와 순복음 신학교 4기 동기였던 어머니를 통해서였다.

한세대 총장 김성혜 목사.-안철민기자

“당시 조 목사가 학생회장, 어머니가 전도부장이었죠. 둘은 서울 탑골공원에서 같이 북치고 노래 부르며 거리전도를 하면서 친해졌대요. 어머니는 조 목사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걸 보고 ‘저렇게 똑똑한 청년이 있다니’하고 감탄하셨다고 해요. 그때 이미 사위를 삼아야겠다고 점찍었다고 합니다. 조 목사가 제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쳐 주면서 저와도 친해졌죠.”

신학교를 졸업한 조 목사와 최 목사는 김 총장이 고1 때 불광동에서 천막교회를 개척했다. 신도들은 대부분 입에 풀칠하기 바쁜 피란민이어서 헌금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때 교회 재정은 조 목사가 선교회 통역과 번역으로 벌어오는 2만7000원과 서울예고를 다니던 김 총장이 피아노 레슨으로 벌어오는 2만원가량이 전부였다. 말하자면 김 총장이 소녀가장처럼 교회 수입의 절반을 책임진 것이다.

“당시 조 목사님이 폐결핵을 앓고 난 뒤였는데 교인 20∼30명 앞에서 엄청나게 큰소리로 설교를 했어요. 건강이 염려돼서 ‘교인도 얼마 없는데 작은 목소리로 설교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아냐, 난 여기에 2000명의 신자가 있다는 기분으로 설교한다’고 대답했어요. 그때부터 큰 뜻을 품고 있었던 거죠.”

그는 이화여대 피아노학과를 졸업하고 1주일 만에 조 목사와 결혼했다. 그러나 연애나 신혼생활은 거의 없었다. 그저 교회에서 얼굴 보는 게 전부였다.

조 목사는 지방 전도회를 갈 때 서울역에 기차 출발 시간보다 2시간 먼저 가 있거나 심방 가는 집을 약속시간 1시간 전에 찾아가 신자들을 난처하게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성격이 급했다고 한다. 반면 그만큼 모든 일에 부지런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성격이었다.

조 목사가 집을 비우는 일이 많다보니 이사 자녀교육 등 집안일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돌이켜보면 자녀 교육을 조금 잘 못한 게 아닌가 싶어요. 모든 걸 목사님 위주로 하다보니까 제가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라’ ‘아버지를 피곤하게 하지 마라’며 아이들과 아버지를 차단시킨 적이 많았죠. 그래서 부자간에 살갑게 지낼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아들 셋 중에 목사가 1명도 안나온 것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지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는 주부나 목사의 사모로만 그치지 않았다.

이화여대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81년부터 호서대 교수, 예술대학장, 사회교육원장 등을 역임했다. 또 강남대 신학과, 연세대 교육대학원(영어교육전공), 베데스다 신학대학원 등도 졸업했다.

그는 지난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한세대 학생들에게 총장이 아니라 목사로서 말씀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동기였다.

“음악도 좋고 장학사업도 좋지만 아무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더욱 보람있는 일이죠.”

그가 목사 안수를 받자 주변에선 2년 앞으로 다가온 조 목사의 은퇴와 후계구도를 연관지어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건 하나님만이 아시죠. 2년 후면 제가 한국 나이로 64세가 되는데 너무 나이가 많지 않나요. 저는 한세대에서 할 일이 많아요. ‘3년 공부, 1년 실습’이라는 ‘3+1제’도 완전히 정착시켜야 하고…. 또 조 목사님이 은퇴한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일에서 손을 떼지는 않을 겁니다. 개척목사가 한꺼번에 손을 떼면 교회 내에 소용돌이가 일어요. 1500여명이나 되는 장로님들을 모시기도 쉽지 않잖아요.”

그는 ‘주위 여건이 어쩔 수없이 돌아가면 몰라도’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조 목사의 뒤를 이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기독교계의 거목이 된 요즘의 조 목사를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은 어떨까.

“젊었을 땐 조 목사님이 ‘이게 뭐야’하고 소리를 지르면 겁이 덜컥 났는데 이젠 하나도 겁이 안나요. 남편 말대로 ‘맞먹는’ 수준이 된 거죠. 한편으론 많이 자상해졌어요. 외국에 나가도 꼬박꼬박 전화해주고 결혼 40주년엔 ‘지난 세월 잘 참아줘서 고맙다’며 편지도 보내와서 제가 잘 보관하고 있어요.”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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