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고속전철 쾌속… 쾌적… 쾌감…

  • 입력 2003년 5월 20일 20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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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전철만큼 말 많던 대형 국책사업도 드물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사업비와 부실공사로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하지만 천덕꾸러기인 줄로만 알았던 고속전철이 국내 기술진의 노력 끝에 국산화돼 시험주행에 성공함으로써 불명예를 어느 정도 씻을 수 있게 됐다.

17일 경부고속철도 천안∼신탄진 시험선 길이 57km 구간. 낮에는 프랑스 기술로 만든 고속전철(KTX)이 내년 4월 개통을 앞두고 씽씽 달린다. 밤이 되자 7량짜리 ‘한국형 고속전철’(KHST)이 36번째 시험운전을 위해 고속선로에 위용을 드러냈다.

이날 시운전에서 한국형 고속전철 1호는 40명의 기술진을 태우고 시속 270km를 돌파했다. 기술진은 다음달 시속 300km 돌파에 맞춰 첫 공개 시운전을 가질 예정. 지난해 8월 첫 시운전에서 시속 60km로 달린 데 비하면 큰 진전이다.

시운전 초기에는 케이블이 잘못 연결돼 꼼짝 안하기도 했다. 또 긴 터널 속에서 갑자기 열차가 멈춰서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제 성능이 나오고 주행도 안정돼 가고 있다. 일본 프랑스 독일에 이어 네 번째로 고속전철 개발국에 진입한 것이다.

“고속전철 개발은 한국이 자랑할 만한 기술개발 프로젝트입니다. 프랑스 기술을 베꼈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비록 프랑스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우리가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해석하고 만들고 시험평가까지 했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성과입니다.”

국산 고속전철 평가에 참여한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한동철 교수의 말이다. 한 교수는 “KTX와 KHST를 모두 타보았지만 승차감에 전혀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4만개나 되는 한국형 고속전철의 부품 중 국산은 92%(가격대비 87%)에 이른다. 최고속도도 시속 350km로, 300km인 도입 차종보다 더 빠르다.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지난해 정부 연구과제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형 국산고속전철 개발사업을 3년 연속 ‘최우수’ 등급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형 고속전철 개발에는 지난 6년 동안 정부 1052억원, 민간 1049억 등 2101억원의 연구비가 투입됐다. 전담기관인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을 중심으로 로템(옛 한국철도차량), 현대중공업, 유진기공, LG산전 등 82개 기업, 18개 연구소, 29개 대학에서 매년 1000명가량이 개발에 참여했다.

개발을 총지휘한 철도기술연구원 김기환 고속철도기술개발사업단장은 “국산은 프랑스에서 도입한 고속전철에 비해 5개 핵심 분야에서 더 좋은 기술을 채택하고 있는 게 큰 차이점이자 자랑거리”라고 강조한다.

전철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인 모터의 경우, 한국형 고속전철은 고장이 적고 유지보수가 간편한 비접촉식 1500마력의 유도전동기를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3번째로 독자 개발했다. 모터에 전력을 공급하고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첨단 전력반도체 소자(IGCT)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또 한국형은 제동력을 높일 수 있도록 마찰+전기제동의 브레이크에 ‘첨단 비접촉 전자석 브레이크’인 와전류 제동방식을 추가해 3중 브레이크를 갖추고 있다. 경부고속철도는 46%가 터널이고 최장 19.25km의 긴 터널도 있다. 터널 속으로 열차가 주행할 때 한국형 고속전철은 압력조절장치로 압력을 변화시킴으로써 승객의 귀가 멍해지는 것을 막고 있다.

김기환 단장은 “지금까지 4000km 이상 시험주행을 했지만 앞으로 10만km는 주행을 해본 뒤 상업운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철도청이 내년에 2007년부터 서울∼목포 구간(대전∼목포는 전철화구간)에 운행할 고속전철 차량을 발주할 때 우리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고속전철을 투입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앞으로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고 운영경험까지 쌓으면 한국은 고속철도의 운영기술뿐 아니라 설계 제작기술도 함께 보유하게 돼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프랑스 일본 독일 등 철도 선진국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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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고속전철 '터널소음' 절반 줄인다▼

고속전철이 있는 선진국마다 큰 골칫거리가 ‘미기압파’라는 소음 공해이다. 이 미기압파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터널 단면적 최적설계 기술이 개발됐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공기유동연구그룹장 김동현 박사는 열차모형을 에어건을 이용해 시속 600km로 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터널주행 시험기를 만들어 시험을 거듭한 끝에 터널 설계 신기술을 개발했다.

미기압파를 줄이는 일반적인 방법은 터널을 크게 뚫는 것이지만 이럴 경우 공사비가 많이 든다.

하지만 김 박사가 개발한 신기술로 터널 입구 단면을 비스듬하게 하고 완충장치를 붙일 경우 소음 기준을 만족시키면서 고속철도 터널의 단면적을 16% 줄일 수 있다.

고속철도건설공단은 김 박사의 연구결과를 받아들여 최근 고속전철의 터널 단면적 기준을 107m²에서 85∼95m²로 수정했다. 김 박사는 “이미 공사가 진행된 서울∼대구 구간은 어쩔 수 없지만 2004년부터 건설될 대구∼부산의 터널구간(58km)과 호남고속전철의 터널구간(92km)에만 이 공법을 적용할 경우 공사비를 3000억원이나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기압파란 열차가 고속으로 터널에 진입할 때 반대편 터널 입구에서 나는 ‘뻥’하는 소리이다. 터널에 열차가 들어서는 순간 압력파가 발생해 소리의 속도로 터널 속을 진행하다가 터널의 반대편 끝에 이르면 이 압력파의 2% 정도가 외부로 방출되면서 터널 근처 민가의 창문을 흔들리게 한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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