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호남民心]與 "DJ조사땐 지지층 이탈" 긴장

  • 입력 2003년 4월 3일 19시 04분


코멘트
호남지역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여권 지도부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까지 대북 비밀송금 사건 특검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특검측 기류가 전해지면서 여권지도부 내에서는 자칫 특검수사가 호남민심 이반의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3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측에도 최근 특검이 김 전 대통령을 조사할 경우 대북 포용정책을 적극 지지해온 전통적 지지층, 특히 호남 출신들의 민심이 악화할 우려가 큰 만큼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전달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송두환(宋斗煥) 특검을 만나 ‘남북관계와 국익 차원의 고려’를 당부하는 방안도 감안해야 한다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호남민심 껴안기’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구주류는 물론 신주류 의원들 간에도 확산되고 있다.

신주류의 한 중진의원은 “어차피 내년 총선에서 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지지 없이는 당선이 어려운 게 현실인 만큼 ‘김 전 대통령을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의리론’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도 95%의 ‘몰표’를 준 호남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지 않으면 ‘전국정당’ 전략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 지역의 한 중진의원도 “YS를 당선시켜 놓고 1년이 못돼 ‘반(反)YS’로 뒤덮였던 ‘TK정서’가 호남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날 대북 송금 사건 특검법 재협상에 기존의 사무총장 라인과 함께 국회 법사위 여야 간사들까지 포함시키기로 한 것도 수사대상에서 대북 송금 부분을 제외해야 한다는 당내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특검법 재협상은 한나라당이 “특검수사의 본질은 양보 못한다”고 버티고 있는 상황. 여기에다 인사 소외 문제만 해도 “지난 정권에서 호남 출신이 요직을 독식했다는 비판이 많았던 만큼 호남 출신들이 다소 양보를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적지 않은 현실이어서 뾰족한 ‘호남대책’이 마땅치 않다고 노 대통령의 측근들은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몰표 줬더니 역차별…총선때 보자"▼

3일 오후 광주 동구 충장로의 한 사무실. 자영업자 세 사람이 막 배달된 한 석간 지방신문을 놓고 한참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 신문의 1면 제목은 ‘노무현 정부 지역개발책 문제있다’였고 사설은 한술 더 떠 ‘선택과 집중이 호남홀대인가’라며 현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유모씨(38)는 “김대중(金大中) 정권 5년간 다른 지역의 눈치를 보느라 호남이 역차별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95% 이상 몰표를 몰아준 죄로 ‘역차별’을 받아야 한다니 어이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사람들도 최근 광주를 다녀간 정찬용(鄭燦龍) 대통령인사보좌관과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이 호남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허튼 소리’만 하고 갔다며 “이대로 간다면 내년 총선 때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 정부를 바라보는 호남지역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고 자부하는 호남사람들은 최근 노 대통령의 ‘대북 송금 특검법’ 전격 수용과 정부의 고위직 인사에서 호남출신 홀대, 지역사업 지원 소홀 등이 이어지면서 서운함을 넘어 ‘배신감’마저 토로하고 있다.

광주시청의 한 5급 공무원은 “과거 30년 동안 홀대받다가 DJ정권 때 겨우 중앙부처에 얼굴을 아는 몇몇 사람이 생겼는데 이제는 중앙에서 전화 한 통 받아 줄 사람이 없게 됐다고 생각하니 암담하고 비참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호남대 신일섭(申一燮) 교수는 “노 대통령이 광주를 ‘문화수도’로 육성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최근 광주를 방문한 이 문화부 장관은 ‘정부 차원의 계획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해 지역민들이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현 정부의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부가 전철화사업에서 호남선을 언급하지 않고, 광양만 지원사업에 소극적인 점이 부각되면서 ‘호남홀대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철신(金哲信·순천시) 전남도 의원은 “선거구민을 만나 보면 현 정부가 호남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특검법에 따라 ‘DJ 구속’ 등 극단적 상황이 오면 호남지역민들은 현 정부에 완전히 등을 돌릴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아직 호남민심에는 큰 변함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 지역의 한 고위 공무원은 “과거 정권이 대통령 또는 당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인재를 등용했다면 현 정부는 개혁이라는 기준과 목표에 따라 국정운영을 하고 있다고 본다”며 “다만 이 기준이 일관성을 잃는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광주=김권기자 goqu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