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초등생 화재때 6학년생들 후배 깨우다 대피못해

  • 입력 2003년 3월 31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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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이 발로 차고 얼굴을 때리며 밖으로 나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형들은 모두 어디 갔나요?”

지난달 26일 발생한 충남 천안시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 사건 때 일부 6학년 축구부 학생들이 후배들을 깨워 대피시킨 뒤 자신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해 화를 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숨진 축구부원 8명 중 6학년생은 5명이다.

화재 직후 천안 단국대병원으로 옮겨져 사흘 만에 의식을 차린 나종우군(12·5년)은 31일 “6학년 형들이 발로 얼굴을 차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고 말했다. 천안 충무병원에 입원 중인 이경진군(11·5년)도 “당시 불타는 소리가 너무 커 형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으나 여기 저기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유가족 대표인 김창호씨(43·고 김바울군의 아버지)는 “부상 학생들은 ‘불이야’ ‘빨리 일어나’라는 6학년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말하고 있다”며 “6학년 학생들이 후배들을 깨우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이들 6학년 학생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사고대책반도 생존자들의 기억과 정황을 종합해 볼 때 6학년 학생들의 ‘살신성인’이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우형식 사고대책반장(충남도교육청 부교육감)은 “6학년 학생들의 살신성인이 사실로 확인되면 도교육청에서 발행하는 도덕 교과서에 우선 게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또 희생 학생들을 명예 국가대표로 인정하는 것도 대한축구협회에 적극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천안=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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