延世大 정시모집에 최연소 합격한 16세 고의천군

  • 입력 2003년 2월 6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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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에서 책을 베개 삼아 누워있는 고의천 군. 고 군은 요즘 문학 역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한편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할 계획.신석교기자tjrry@donga.com
공부방에서 책을 베개 삼아 누워있는 고의천 군. 고 군은 요즘 문학 역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한편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할 계획.신석교기자tjrry@donga.com
고의천군(16)은 남들 하루 사는 동안 사흘을 부지런히 살았다. 고군은 검정고시를 통해 중고교 과정 6년을 2년 만에 마치고 1년간 재수를 거쳐 올해 연세대 정시모집 사회계열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고군이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어서”이다. 검정고시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어머니 신은순씨(43)였다.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아들에게 6년은 시간 낭비일 것 같았다. 가능한 한 정규 교육 기간을 단축시키고 대학에서 아들이 원하고 아들의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하게 하고 싶었다.

고교에서 수학 교사를 했던 아버지 고형석목사(46)도 반대하지 않았다. 고 목사도 한국의 고교에서는 진정한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며 교사를 그만두고 뒤늦게 신학대학원을 다닌 전력이 있었다.

고군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때부터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해 학원을 다녔다. 2000년 2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8월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001년 4월에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그해 11월 수능시험을 치러 313점을 받았다. 그리고 재수 생활을 거쳐 2002년에는 수능 성적이 371점으로 올랐다.

고군이 가장 자신있어 했던 과목은 수학. 수학은 문제를 많이 풀기보다 원리를 이해하는 데 주력했다. 집합, 수와 식, 방정식과 부등식 등 단원을 하나하나 배워나갈 때마다 집합과 확률, 집합과 방정식 등 여러 가지의 개념을 개별화하지 않고 통합해 이해하려고 애썼다.

사회와 과학 과목은 교재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만의 이해의 틀을 가지고 큰 흐름을 먼저 잡은 뒤 세부 항목을 가지쳐 나가면서 정리했다.

가장 어려운 과목은 국어. 국어의 기초는 독서인데 고군의 독서는 초등학생 수준에서 멈춰 있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영어 공부하듯 국어사전을 찾아 어휘력을 조금씩 늘려 나갔지만 마지막까지 고전한 끝에 수능에서 120점 만점에 98점을 받는 데 그쳤다.

고군은 학교를 그만둔 대가로 또래 친구가 거의 없다. 검정고시 학원에는 고군처럼 빨리 대학에 가려는 소수의 영재들과 오랜 해외 생활로 일반 고교에 적응이 어려운 형과 누나들, 그리고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미뤄둔 공부를 하려는 다수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또래 친구들은 없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어렵게 공부하는 형들이나 50이 넘어 공부하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또래들은 줄 수 없는 자극을 받았다.”

재수 학원에서 만난 형들은 서로 경쟁하는 입장이었지만 고군에게는 “너는 담배 배우지 말아라” “당구는 대학 가서 시작해라” 등 따뜻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고군은 정규 교육 기관을 떠나 집에서 스스로의 학습 계획에 따라 공부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홈스쿨링을 한 셈이다. 홈스쿨링은 학생 본인의 확고한 목표 의식이 있어야 한다. 또 부모의 뒷받침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고군의 어머니 신씨는 “부모가 교사 대신 아이를 지도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홈스쿨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버지 고 목사는 서울대 수학교육과 출신이고 신씨는 전남대 음악교육과를 나왔다. 아버지는 수학과 과학 기술을, 어머니는 음악과 어학을 도왔다. 고군이 학원 생활에 영 적응을 못할 경우 열 일 제쳐두고 아이에게 매달릴 각오가 돼 있었다.

고군의 공부방에는 초등학생 때 읽은 과학 전기 백과사전류와 과목별 입시 서적이 빽빽이 꽂혀 있다. 사춘기 소년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탐독하는 무협지도, 웃고 있는 연예인의 브로마이드도 없다.

요즘은 빼먹은 성장 과정을 만회하기 위해 뒤늦게 채만식의 ‘삼대’, 김유정의 ‘봄봄’ 등 문학 서적을 읽는다. 브라운 아이즈의 ‘점점’과 성시경의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도 불러본다.

고군은 1학기를 다닌 뒤 1년 정도 휴학할 계획이다. 휴학 기간에 여행을 다니며 견문을 넓혀 동급생들과의 심리적인 나이차를 줄여볼 생각이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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