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장애아 대소변 받으며 사랑 배워요"

  • 입력 2003년 1월 5일 19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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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내곡동 서울시립 아동병원에서 무연고 중증 장애아동들을 돌보며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 신숙정 이재경 이상호씨(왼쪽부터).전영한기자
강남구 내곡동 서울시립 아동병원에서 무연고 중증 장애아동들을 돌보며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 신숙정 이재경 이상호씨(왼쪽부터).전영한기자
“우리 상준이(가명) 착하지. 형이 목욕시켜 줄게 얌전히 있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서울시립아동병원, 뇌성마비로 뻣뻣하게 굳어버린 여덟 살 상준이의 몸을 주무르고 있는 이상훈(李相勳·25·그리스도신학대 사회복지학과 4년)씨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시립아동병원은 심한 장애 때문에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어린이들의 치료와 재활을 담당하는 곳. 이씨는 여기서 이들 장애아를 돌보며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작년 말 서울시의 대학생 아르바이트 프로그램에 지원한 그는 지난달 26일부터 이곳에 배치받아 일하고 있다. 겨울방학 동안 서울시청과 산하 사업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대학생은 모두 430명. 다들 쉽지 않은 임무를 받았지만 시립아동병원에 배치받은 이씨 등 17명은 ‘하필이면 이런 곳에…’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이들의 하루는 장애아들의 기저귀를 받아 분리수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종대 일어학과 2학년인 신숙정(辛叔貞·여·21)씨는 “기저귀 가는 일이 가장 힘들다”며 “솔직히 첫날은 냄새 때문에 밥도 못먹었다”고 털어놓았다. ‘남의 대소변까지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그만두고도 싶었다. 그러나 신씨는 “지금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며 생긋 웃었다.

목욕이 시작되는 오후 1시경은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 목욕은 간호사들이 맡아 하지만 환자의 몸을 수건으로 닦고 옷을 입혀 침대로 데려가는 것은 이들의 일이다. 수십 명의 아이들을 차례로 안고 왔다갔다 하면 허리가 뻐근해진다.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책을 읽어주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성격이 급한 이상훈씨는 밥을 제대로 씹지 못하는 아이들 때문에 답답해하기 일쑤였다. 이씨는 “한 입씩 떠 먹여 주고 흘리는 음식물을 닦아주면서 참을성까지 배우고 있다”며 흐뭇해했다.

총신대에서 아동미술을 전공하는 이재경(李栽庚·19)양은 장애 정도가 덜한 아이들과 종이 찢기, 낙서하기 등을 하며 놀아주다가 벌써 정이 듬뿍 들었다.

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몸이 뒤틀린 어린이들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지만 돌보는 동안 이들이 우리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젠 다 내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이들이 받는 일당은 2만원. 돈만 바라보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상훈씨는 “성한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았다”며 “전공을 살려 계속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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