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잡기’ 바쁜 선거운동원과 선관위 직원들의 하루

  • 입력 2002년 12월 17일 18시 32분


대통령 선거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한 표’라도 더 얻으려는 정당 선거운동원과 투표율을 높이려는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발걸음이 더욱 바빠지고 있다. 후보들의 화려한 유세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꼭두새벽부터 거리에 나서서 휴일까지 반납하고 있다. 아파트와 지하철역 후미진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표심 잡기’에 정열을 쏟고 있는 선거운동원과 선관위 직원들의 하루를 추적했다.

●정당운동원 조두환의 바쁜 하루

“기호 ○번 ○○○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17일 오전 7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지하철 아현역. 출근길 시민들에게 선거운동원들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이 ‘아침인사’는 10∼15초 간격으로 오전 9시까지 쉴 틈 없이 이어진다. 30초에 한 번씩 해도 줄잡아 240회 이상 허리를 굽힌다. 허리가 뻐근하지만 ‘대충’할 수는 없는 일. 힘든 내색도 금물이다. 항상 미소만 띠어야 한다.

이들이 받는 일당은 교통비 식대를 합쳐 하루 4만5000원. 하루 평균 7∼8 곳을 돌며 이 ‘인사’를 반복하고 있다. 조두환(曺斗煥·34) 모정당 서대문구 선거운동원 팀장은 “후보에 대한 진심 어린 지지가 없으면 하기 힘들다”고 했다.

오전 11시. 조 팀장의 팀원 8명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지역구 의원의 지지연설장으로 뛰어갔다.

중앙당의 무용팀이 찬조출연, 화려한 율동을 선보일 때마다 조씨와 팀원들은 박수를 치며 후보 이름을 연호하는 게 임무. 길 가던 걸음을 멈추고 경청하는 시민들은 많지 않은 편이지만 마지막 한 표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후 6시경 조씨와 팀원들은 ‘저녁인사’를 위해 다시 아현역 주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인사는 바쁜 출근길보다는 한결 여유가 있다. 한 30대 회사원이 “○○○ 파이팅”을 외치고 지나갈 때는 힘이 솟았다. 21일 간의 공식 선거운동을 하루 남겨둔 조씨는 오후 9시가 넘은 시각, 다시 행인들에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입니다. 좋은 밤 되세요.”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선거 15번째 치르는 선관위 김보상씨

서울 서대문구 선거관리위원회 김보상(金保床·49) 사무국장은 17일 서대문구 현저동 한성과학고 체육관에 개표소를 설치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김 국장의 수첩은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히 차있다. 투표참관인 신고, 미발송 및 반송부재자 명부 통지, 투표함 수송, 투표소 설비, 개표참관인 신고 등.

공식 선거운동은 11월 27일부터 시작됐지만 김 국장을 비롯한 서대문구 선관위 직원들은 10월 초부터 오전 8시 출근해 밤 11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서대문구 유권자는 28만명이 넘지만 선관위 직원은 공익근무 요원 9명을 포함해 17명이 고작. 한 달째 일요일도 반납했다.

선거인명부 작성과 투표용지 인쇄, 공식 선거홍보물 발송, 부재자 투표, 공명선거 캠페인, 부정선거 감시 활동, 투표 참관인 및 개표사무원 교육 등 선거에 필요한 준비 작업은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 투표용지 작업도 기표란 인쇄에 문제점이 없는지, 후보 이름이 특별히 연하거나 진한 게 없는지 28만장이 넘는 투표용지를 일일이 확인했다.

1985년부터 선관위 직원으로 근무해 그동안 크고 작은 선거를 15번 이상 경험한 그는 “이번 선거는 적은 비용으로 치러지는 것이 큰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선거법을 ‘숙지’하고 있는 각 정당의 선거운동원들이 법의 맹점을 악용해 편법운동을 벌이거나 흑색선전, 인신공격을 해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크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 국장은 “우리도 표를 얻으려는 노력은 선거운동원 못지않다. 특정 후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총의를 모으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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