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어느 교감선생님의 편지

  • 입력 2002년 12월 3일 01시 42분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지금의 학교는 그 물살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모래알 학교 대책은 없나’(본보 11월 30일자 A25면 동서남북)를 읽고 경북 안동시내 한 고교 교감이 기자에게 보내온 편지에는 학교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교사와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텅빈 학교에 남아 편지를 쓴다는 교감선생님은 “교사들이 퇴근하는 오후 4시 반 이후 학교는 깊은 산속 암자가 아니라 쓸모 없는 가건물, ‘텅빈 공룡’”이라고 말했다.

“학생보다 늦게 학교에 나오는 교사들을 보며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정규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교에 남아 공부나 컴퓨터를 하고 싶어도 교사들이 집에 가버리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런 현실을 외면하면서 일부 교사들은 ‘참교육’을 외치고 있으니 통탄할 일입니다.”

이 교감은 “앞으로 가장 먼저 없어질 조직이 학교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며 “이런 현실을 눈앞에 보면서도 아무런 대항력을 갖지 못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9월에 부임해 느슨한 학교를 바꿔보려고 하고있지만 너무 힘듭니다. 소신껏 변화를 추진하려고 하니 교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솔직히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하루하루 편하게 지내려고 하니 월급이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 교감은 “신문기사를 교무실에서 교사들과 함께 돌려가며 읽었지만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며 “왕따를 당해 지구상에 혼자 남는 한이 있더라도 모래알처럼 변해가는 학교를 바꿀 수 있도록 발버둥치겠다”고 다짐하며 편지를 맺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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