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의 '수호천사'…김정부씨 사랑의 봉사 4년

  • 입력 2002년 10월 4일 18시 41분


치매노인을 돌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김정부씨(가운데)와 김씨에게서 진정한 봉사정신을 배운다는 여성 사회복지사들. - 청도=이권효기자
치매노인을 돌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김정부씨(가운데)와 김씨에게서 진정한 봉사정신을 배운다는 여성 사회복지사들. - 청도=이권효기자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서 유치원 운전사로 일하는 김정부(金正父·60)씨는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치매노인 요양시설인 ‘효사랑마을’에 오전 5시면 어김없이 도착한다.

98년 6월 효사랑마을이 개원한 뒤부터 몸이 아팠을 때를 빼고는 지금까지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이 시설에서 생활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90여명은 김씨가 오지 않으면 아침밥을 먹기 싫어할 정도가 됐다.

“출근하기 전 2시간가량 어르신들 건강상태를 확인한 뒤 밥을 챙기고 기저귀를 갈아드립니다. 처음엔 여러 가지 힘들었어요. 지금은 정이 들어 하루도 빼먹을 수 없어요.”

오전 6시경 아침식사 시간에 김씨는 혼자 밥을 먹기 어려운 어른들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밥을 떠먹여준다. 그에게 있어 밥 떠먹이기나 양치질, 목욕, 휠체어를 태워주는 일 등은 별 것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늙고 병든 어른들을 마음에 와닿게 위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할머니들이 아프다 괴롭다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해요. 치매라고 하지만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나 봐요. 외로움이나 절망감 같은 것을 눈빛에서 느낍니다. 한없이 약해지는 이런 생각이나 느낌을 잠시라도 잊어버리도록 해주는 게 가장 절실한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60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김씨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노래도 불러 준다.

유치원 일이 끝나는 오후 4시경 그는 다시 이곳으로 온다.

“살아계셨더라면 여든이 됐을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어른들을 만납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돌아가셨지만 제대로 모시지 못한 듯한 죄스러움이 늘 남습니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보니 그런 생각이 더 간절해지더군요.”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살던 김씨는 93년 서울 생활을 접고 부인과 함께 장인의 고향인 청도로 내려왔다. 부인 변희선(卞喜先·48)씨 역시 틈만 나면 혼자 사는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변씨는 “시골에 살고 싶어 내려왔는데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 좋다”고 말했다.

“노인문제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아요. 늙으면 누구나 병들 수 있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좀 건강한 사람이 불편한 어른들을 형편대로 돌보면 문제가 발생할 수가 없지요.” 노인문제에 대한 김씨의 해법(解法)이다.

효사랑마을측이 그동안 김씨가 한 봉사활동시간을 몰래 계산해보니 6400여시간. 이곳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와 간호사들도 김씨에게서 ‘노인복지’가 무엇인지 배운다고 입을 모았다.

박현효(朴鉉孝·37) 원장은 “오전 5시부터 한두시간은 일손이 가장 모자라는 시간”이라며 “그 역시 귀찮을 때도 있을텐데 아직 한번도 억지로 하는 듯한 표정을 못봤다”고 말했다.

청도〓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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