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차 빗속 과속질주 중앙분리대 넘어 고속버스 덮쳐

  • 입력 2002년 6월 15일 23시 08분


‘꽝, 우지지지지직∼.’

고속버스 승객들은 유조차의 ‘습격’을 받은 순간 굉음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차량 지붕이 소름 끼치는 금속음을 내며 찢어지기 시작했고 곧이어 거대한 쇳덩어리가 마치 고철 압축기처럼 머리 위를 짓눌러 왔다.

▽사고 순간〓15일 오후 3시반경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암리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2차로를 달리던 15t 유조차가 갑자기 1차로로 넘어가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이어 유조차는 분리대를 부수고 맞은편 하행선 1차로를 달리던 고속버스의 왼쪽을 윗부분부터 훑어내렸다.

“굉음과 함께 차량 천장이 눌려왔어요. 비명을 지르다 실신했지요.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렸고 버스는 온통 피바다였지요.”

고속버스에 타고 있다 부상한 김영란씨(55·여)의 증언이다.

고속버스는 유조차에 들이받힌 뒤 오른쪽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며 뒤집혔다. 이어 고속버스를 뒤따르던 택시와 승합차 등 4대가 연쇄 추돌사고를 일으켜 고속도로 상하행선이 5시간 이상 극심한 체증을 빚었다.

▽인명피해〓이날 사고로 이영순씨(63·여·서울 은평구 대조동) 등 고속버스 승객 15명이 숨지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부상자와 사망자의 시신은 옥천 성모병원과 대전 중앙병원 등으로 옮겨졌다.

사고를 당한 버스는 이날 오후 1시경 승객 26명을 태우고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출발해 부산으로 가던 중이었다.

버스에는 미국인 심스토미 딘(47)이 타고 있었으나 왼쪽 눈 부위에 약간의 상처만 입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88년 입국해 부산대에서 영어초빙교수 생활을 한 뒤 2000년부터 한국 법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일로 서울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사고 경위 및 경찰 수사〓유조차 운전사 이굉씨(61)는 “시속 80㎞ 정도로 달리는데 왼쪽 바퀴가 펑크난 듯 갑자기 핸들이 왼쪽으로 돌아가 1차로를 거쳐 중앙분리대를 넘어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 지점은 유조차의 진행 방향으로 볼 때 오른쪽으로 꺾어진 커브길이다. 사고 지점 인근인 금강2교부터 옥천터널까지 구간은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고속도로 사고다발 지점이어서 현재 선형 개선 공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은 사고 당시 약간의 비가 내린 데다 운전사 이씨가 과속으로 달리다 커브길에서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경찰은 또 이씨의 음주 운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씨의 혈액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검사를 의뢰했으나 이씨는 “수십년 무사고 경력에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며 음주 사실을 부인했다.

옥천〓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사망자 ▽옥천 성모병원 △지분선 △강병주(27·부산외대 서양어과) △이영순(63·서울 은평구 대조동) △김창수 △신원미상 여자 2명 ▽대전 중앙병원 △권대현 △김철민(36·서울 영등포구) △구계숙(여) △김춘자(여·부산 부산진구 초음동) △신원미상 남자 1명 ▽대전 선병원 △김재도(29) △서문국(28) ▽충남대병원〓△한우열(46) △이화숙(23·여)

◇부상자 ▽옥천 성모병원 △김유미(20·여) △김영호(28) △김영란(55·여) △권오기(52) △백상우(29) △신정한(30) △이승철(31) △이민호(29) △이두혁(43) △이굉(61) △장진철(27) △조춘효(43) △장형근(26) △장동명(26) △신원미상 여자 1명 ▽옥천 서울병원 △심스토미 딘(47·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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