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수험생 무시한 교육부

  • 입력 2002년 4월 29일 18시 44분


2002학년도 대학입시 추가모집 최종 등록일이었던 2월22일 서울의 한 대학은 상위권 학과 합격자 10여명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다.

정시모집 합격자 중 일부가 조건이 좀 더 낫다는 대학의 추가모집에 지원하느라 정시 등록을 포기해 결국 이 대학은 그만큼의 신입생을 채우지 못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이런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정시모집에 합격해 등록한 수험생은 추가모집에 지원하지 못하도록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29일 뒤늦게 알려졌다.

정시 합격자의 등록 포기 금지는 수험생에게는 중요한 입시정책의 변화인데도 정작 수험생들은 이런 논의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몰랐다. 더군다나 2003학년도 대입전형 기본계획과 대학별 모집요강이 2, 3월에 이미 발표됐기 때문에 일선 교사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교육부는 당초 수시모집 합격자의 정시지원을 금지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는 과정에서 대학들이 추가모집의 문제점을 집중 제기해 반영했다고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서울대가 사상 처음으로 추가모집을 실시하면서 막판에 학생을 빼앗겨 자존심이 상한 일부 상위권 대학들이 강하게 반발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애써 합격자를 뽑아놓으면 빠져나가는 연쇄이동 현상 때문에 행정력의 낭비와 다른 수험생의 합격 기회를 박탈한다”는 교육부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대학들과는 의견 교환이 됐는지 모르지만 정작 일선 고교와 수험생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지적에 대해 “그게 그렇게 큰 문제냐”는 교육부 반응은 실망스럽다.

솔직히 입법예고도 언론에 공표되지 않으면 관보(官報)나 부처 홈페이지의 한 구석에 실린 내용을 제대로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교육부는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고 하지만 대학의 목소리만 듣고 일선 학교와 수험생의 의견을 들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는지 되돌아봤으면 한다.

이인철기자 사회1부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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