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피살 수사]英경찰 “민박집 한인주인 추적”

  • 입력 2002년 1월 11일 18시 17분


프랑스 어학 연수생 진효정(晉孝情·22)씨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영국 경찰은 진씨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런던의 한인 민박집 주인 김모씨(31)와 사건 추정일 현장 주변에서 목격된 백인남자의 소재 파악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또 김씨가 운영하는 런던의 다른 민박집에 묵었다가 실종된 영국 유학생 송인혜씨(23) 실종과의 관련 여부도 조사 중이다.

영국 경찰은 진씨의 변사체 발견 지점인 요크셔 인근의 아스캄 리처드 마을 도로에서 지난해 11월 2일 목격된 40대 초반의 백인남자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마을 주민이 이날 오전 4시경 마을 진입로 부근에 승용차가 주차돼 있었으며 백인남자 1명이 길 가운데 서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한편 송씨의 실종신고를 하고 행방을 추적해온 재영 한인 지미 김씨는 김모씨의 민박집에 묵었던 다른 학생들이 김씨가 10월 30일 감색 푸조 승용차 렌터카를 몰고 외출했다가 11월 1일 오후 1시경 런던시내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봤다고 주장했다. 진씨는 지난해 10월25일부터 3일 일정으로 영국을 방문해 11월 18일 요크시 인근 마을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지미 김씨는 진씨의 카드에서 지난해 10월 30일 7차례 현금이 인출된 기록이 있으며 김씨의 홀본 민박집에서 도보로 3, 4분 거리에 있는 은행에서 인출됐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내 카드들은 1일 현금인출 한도가 한정돼있으나 한국 신용카드들은 1일 인출한도 없이 신용한도까지 인출이 가능한데 이를 아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은 10일 프랑스 전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추산되는 단기 어학연수생은 2000여명으로 이들은 장기 유학생보다 상대적으로 비자 사기나 납치 폭행 등의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기 어학연수생은 △프랑스가 3개월 무비자이므로 비자 없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고 △파리보다는 프랑스 체류증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지방으로 몰리며 △재외국민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안전을 보장받기가 그만큼 더 어렵다는 것이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유학생피살’극적으로 밝혀내▼

프랑스 어학연수생 진효정(晉孝情·22·전북대 불문과 3년 휴학 중)씨 피살사건이 밝혀진 것은 인터넷 한인 네트워크와 영국에서 연수 중인 한국인 경찰관, 그리고 진씨의 오빠(24·원광대 한의대 본과 4년) 등 3자의 노력 덕분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자칫 미궁으로 빠질 뻔했으나 이들 3자의 노력과 협조로 피살자가 한국인 여대생 진씨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영국 경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진씨의 변사체가 발견된 것은 지난해 11월 18일 영국 웨스트요크셔주 리즈시에서 동북쪽으로 40㎞ 떨어진 아스캄 리처드 마을. 현지 지역신문들은 20∼40세가량의 동양 여성의 시체가 한국어로 ‘제노바’라고 씌어진 가방 속에 담겨진 채 발견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영국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나섰으나 신원 확인이 안돼 답보상태에 빠졌다.

영국 리즈대학에서 연수 중이던 임병호(林`浩·37·인천지방경찰청)경정은 현지 신문을 보고 직감적으로 피살된 여성이 한국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리즈 한인회 홈페이지에 주위에 실종 여성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글을 올렸다.

임 경정의 글을 본 리즈 한인회는 한인 100여명을 상대로 실종자 신고 접수를 받는 등 피살자 신원 확인에 애를 썼으나 허사였다.

이로부터 한달여가 지난 12월 30일. 진씨의 오빠는 연락이 끊긴 동생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다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한국 여행객을 상대로 민박집을 알선하는 ‘스네일홈닷컴’(www.snailhome.com)이란 사이트를 찾아내 자유게시판에 ‘실종된 동생을 찾는다’는 내용의 글과 진씨의 사진을 올렸다. 이 사이트는 유럽 배낭여행족이나 한인 민박업소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사이트로 한인들 사이에 ‘달팽이집’으로 불린다.

1월 1일 우연히 자신의 민박집(영국 리즈 소재)을 소개하기 위해 이 사이트를 방문한 류정숙(영국명 피오나·34·여)씨가 진씨 오빠의 글을 보고 실종된 진씨가 변사체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임 경정에게 연락을 취했다.

임 경정은 즉시 진씨 가족과 국제전화로 통화하면서 진씨의 주민등록증에 있는 오른손 엄지 지문과 치아의 상태가 나와 있는 치과진료기록, 진씨의 사진 등을 e메일로 받아 2일 영국 경찰에 신고했다.

영국 경찰은 이를 토대로 주영 한국대사관에 의뢰해 진씨의 열 손가락 지문을 넘겨받은 뒤 변사체의 주인공이 진씨라고 결론 내리고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영국 경찰은 진씨의 행적을 쫓는 한편 영국에서 실종된 한국 여대생 송인혜씨(23·경인여대 무역학과 3년 휴학 중)도 정씨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별도 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임 경정은 11일 기자와의 국제전화 통화에서 “인터넷 한인 네트워크와 주민들의 협조, 동생을 찾으려는 진씨 오빠의 노력이 없었다면 진씨 사건은 영원히 묻혀버릴 가능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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