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김 형제들 넋 달래는 천도재 올려

  • 입력 2002년 1월 2일 18시 28분


“언니! 이제는 가슴에 맺힌 한을 풀고 저세상에서나마 행복하길 바라. 언니는 더 이상 간첩이라는 멍에를 쓰지 않아도 돼. 배고파 울던 동생들을 위해 술도가에서 얻어온 술지게미를 먼저 먹이던 예전의 그 착한 언니로 영원히 기억될 뿐이야….”

87년 홍콩에서 남편 윤태식(尹泰植)씨에 의해 살해된 뒤 간첩누명을 썼던 수지 김(본명 김옥분·金玉分·당시 35세)의 넋을 달래는 천도재(薦度齋)가 2일 오전 그녀가 생전에 다녔던 충북 충주시 직동 창룡사(蒼龍寺)에서 열렸다.

시신도 유골도 없이, 지난해 11월 홍콩 외곽의 수지 김 묘지에서 가져온 한줌 흙을 놓고 치러진 천도재에는 이 사건 후 흩어져 살던 형제들이 모두 모였다. 옥자(49), 옥경(45), 옥임(玉任·41·충주시 칠금동), 옥희씨(34) 등 동생들과 올케 이명수씨(53)는 억울하게 숨진 수지 김의 영혼을 15년 만에 달랬다.

영전에 잔을 올리던 유족들은 15년간 간첩 누명을 썼던 수지 김과 ‘간첩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다 세상을 등진 수지 김의 어머니, 큰언니, 오빠를 떠올리며 오열했다.

수지 김의 셋째동생 옥임씨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홀가분하게 언니를 보내려고 했는데 윤태식과 국가정보원 관계자 등 가해자들에게서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해 억울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울먹였다.

옥임씨는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만큼 윤태식과 이 사건을 은폐 축소하는 데 관여한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엄중한 법의 심판이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들은 5시간에 걸친 천도재가 끝난 뒤 충주시 앙성면 본평리 달래 공원묘지의 수지 김 어머니 묘소에 홍콩에서 가져온 흙을 뿌리며 수지 김을 어머니 품으로 돌려보냈다.충주〓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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