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피는 진했다" 입양한 친형에 골수기증

  • 입력 2001년 12월 4일 18시 24분


미국으로 입양된 뒤 희귀병을 앓고 있는 친형을 위해 얼굴도 모르는 한국의 어린 동생이 골수를 기증했다.

미국 신시내티에 살면서 판코니 빈혈로 투병 중인 이병조군(14·미국명 토머스 샌키)과 경북 경주시에 살고 있는 경호군(5).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중앙병원은 4일 경호군으로부터 골수를 채취해 미국으로 긴급 공수했다.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었던 이군의 부모가 생후 4개월밖에 안된 장남 병조군을 미국으로 입양시킨 것은 1988년 3월.

그러나 생부모의 품을 떠나 파란눈의 양부모 손에서 자라온 병조군에게 두 번째 불행이 닥쳐왔다. 3세 무렵부터 백혈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판코니 빈혈 증상이 나타난 것. 이 병은 골수 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미국에서 적합한 기증자를 찾지 못해 애태우던 양부모는 결국 병조군의 입양을 주선한 대한사회복지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복지회는 올 초 병조군의 한국 가족을 찾아냈고 동생 경호군의 혈액 유전자형이 병조군과 같은 것을 확인했다.

경호군은 수술이 끝난 뒤에도 친형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남을 돕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배웠다”며 밝게 웃었다.

골수 채취를 맡은 서울중앙병원 소아종양혈액내과 김태형(金泰亨) 교수는 “백혈병을 앓은 한국계 입양아로서 96년 성덕 바우만군과 97년 데이비드 파머군이 타인의 골수를 이식받았지만 국내의 친혈육으로부터 골수를 이식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경호군의 골수는 이날 오후 5시 비행기로 미국에 보내진 뒤 48시간 이내에 병조군에게 이식된다.

경호군의 어머니(38)는 “태어나자 마자 젖 한 번 못 먹이고 떠나보냈는데 병까지 걸렸다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며 “병조가 경호의 골수를 받아 건강하게 뛰어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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