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 실향민 쓸쓸한 망향가…200여명 5년제 귀향제

  • 입력 2001년 10월 14일 18시 42분


“앞으로 얼마나 더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지…. 지긋지긋할 때도 됐는데 아직까지도 그 때가 그리워.”

68년 밤섬 폭파로 서울 마포구 창전동 일대로 집단 이주했던 실향민 200여명이 최근 오전 바지선과 황포돛배에 나눠 타고 ‘고향’ 밤섬을 찾았다. 갈대밭으로 변한 마을터를 둘러보던 실향민 유정임씨(71)는 “이곳이 목수들이 황포돛배를 만들었던 장소”라며 옛 기억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생김새가 밤을 닮았다고 해서 ‘율도(栗島)’라는 이름이 붙여진 밤섬에는 60년대까지만 해도 60여 가구 450여명의 원주민이 거주했다. 그러나 68년 여의도개발이 시작되면서 골재 채취를 위해 섬이 폭파됐다. 하루아침에 실향민으로 전락한 원주민들은 밤섬이 내려다보이는 한강 건너편 창전동 와우산 일대로 집단 이주해야만 했다.

“네 것 내 것 없이 서로 나눠 쓰던 인심 좋은 마을이었지. 황포돛배를 만들어 물에 띄우는 날이면 잔치라도 열린 것처럼 떠들썩했는데….”

땅콩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렸던 유씨. 남편 김성영씨(77·밤섬보존회 회장)와 함께 밤섬을 떠나던 68년 1월을 잊지 못한다. 청천벽력과도 같았던 집단이주 통고장에 서러워했던 것도 잠시, 섬이 폭파되던 장면을 보고는 목놓아 울었다. 세 자매를 낳아 키우던 보금자리가 산산조각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것은 지금까지도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

올해로 5년째인 ‘밤섬 실향민 고향 방문행사’는 이들이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철새 도래지로 변한 밤섬이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향민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귀향제(歸鄕際)를 지내며 한강의 용왕신과 밤섬주신(主神)에게 소원을 빌고 고향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덜었다.

현재 창전동 삼성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유씨는 밤섬에서 아파트 입구에 옮겨 지은 당집 ‘부군당’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매년 음력 초이튿날 섬의 안녕을 기원하는 도당굿을 올린다는 것. 유씨는 “실향민들이 연로해져 방문자 수가 점점 줄어들어 걱정”이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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