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교생 수업중 급우 살해…폭행-따돌림에 앙갚음

  • 입력 2001년 10월 13일 18시 29분


《고교생이 수업 중 교실에서 교사와 급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급우를 식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살인을 저지른 학생은 조직폭력배를 다룬 영화 ‘친구’를 무려 40여차례나 보며 평소 자신을 괴롭혀온 이 급우에 대한 범행충동을 느껴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고교생이 수업 중 교실에서 교사와 급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급우를 식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살인을 저지른 학생은 조직폭력배를 다룬 영화 ‘친구’를 무려 40여차례나 보며 평소 자신을 괴롭혀온 이 급우에 대한 범행충동을 느껴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발생〓13일 오전 10시10분경 부산 남구 용호동 D정보고 1학년 2반 화공과 교실에서 김모군(16)이 식칼로 급우 박모군(16)의 왼쪽 등을 찔러 숨지게 한 뒤 달아났다.

급우들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결석한 김군은 이날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가 2교시 수업시간 중 식칼을 신문지에 싸서 숨긴 채 뒷문으로 들어와 뒷문 바로 옆 맨 뒷좌석에 앉아있던 박군의 왼쪽 등을 1차례 찔렀다는 것.

사건 당시 교실에서는 학생 29명이 출석한 가운데 사회과목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교사 신모씨(41)가 공책 검사를 하고 있었으나 김군이 갑자기 들이닥쳐 범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교사와 급우들이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칼에 찔린 박군은 심장을 관통당해 쓰러졌으며 급히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는 도중 숨졌다. 김군은 사건직후 집으로 도망쳐 옷가지를 챙겨 나오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동기〓김군은 경찰에서 “입학 직후인 3월부터 박군이 너무 괴롭혀왔고 일방적으로 폭행당한 게 억울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박군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던 김군은 영화 ‘친구’를 컴퓨터를 통해 40여차례나 보고 보복심리를 느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군이 이 영화의 대사를 전부 다 외울 정도로 심취해 있었다고 밝혔다.

김군은 박군보다 덩치가 더 컸으나 반에서 속칭 ‘짱’으로 통하는 박군에게 상당한 괴롭힘을 받아 왔다고 급우들이 전했다.

특히 지난달 28일 점심시간에는 노래방에 가는 문제를 놓고 여러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군이 박군에게 10여분간 심하게 구타당했으며 김군은 그 이후 지금까지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점과 전문가 진단▼

이번 사건은 폭력적이거나 폭력을 미화하는 영상물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현실로 입증한 셈이 됐다.

학교측과 교사들에 따르면 김군과 박군은 모두 결손가정에서 자랐으나 김군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친구가 많지 않은 반면 박군은 성격이 활달해 1학기 때는 반장을 맡는 등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는 것. 그러나 둘 다 교내 폭력서클 등과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군은 박군에게 폭행당한 이후 10여일동안 학교에도 나오지 않고 복수를 결심해 왔는데 그동안 김군의 입장을 들어줄 사람은 학교에도 집에도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사건 이후 학교에서는 김군과 박군을 불러 화해를 시킨 뒤 되돌려 보내기는 했으나 이후 김군의 결석에 대해 어머니에게 학교에 보내라는 전화를 하는 것 외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주위의 무관심이 이 사건을 낳은 또 하나의 요인이 됐던 셈이다.

동아대 손승길(孫勝吉·56·윤리학) 교수는 “최근 ‘친구’나 ‘조폭마누라’ ‘신라의 달밤’ 등 폭력을 미화한 영화나 컴퓨터게임 등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사회적 문제”라며 “폭력문화나 학교폭력 등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규제 장치를 강화하거나 범죄행위에 대해 죄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학교 윤리교육을 강화하는 등 다각도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조용휘·석동빈기자>silen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