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두대 피랍오인 '격추'위기 모면

  • 입력 2001년 9월 14일 18시 35분


미국 주요 도시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발생하고 5시간여가 지난 12일 오전 3시(한국 시간) 캐나다 상공. 앵커리지를 출발해 뉴욕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KE085편에 앵커리지공항 관제탑으로부터 긴급 전문이 도착했다.

“공중 납치(하이재킹) 당했나?” (관제탑)

“무슨 소리냐. 무슨 사고라도 났나.” (기장)

뜬금없는 관제탑의 물음에 놀란 기장. 조종실 밖 객실에 테러리스트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등쪽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현재 상황을 설명해 달라.” (기장)

“교신 코드를 하이재킹 코드로 변환하라.” (관제탑)

기장은 이 지시에 따라 공중 납치됐다는 사실을 관제탑에 비밀리에 알리는 코드 변환을 했다.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잠시 후 KE085편 주변으로 캐나다 군용기가 접근하며 미국과 캐나다 접경 지역에 위치한 화이트호스공항으로 기수를 돌릴 것을 명령했다. 기장은 승객들의 안전과 함께 한국에 있는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는 못 보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엄습해왔다.

걱정도 잠시. 캐나다 군용기와 알래스카공항 관제탑으로부터 화이트호스공항에 즉시 착륙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조종간을 쥔 손에 땀이 찼다.

1분 후 기장은 활주로로 비행기를 안착시켰다.

기장은 착륙하자마자 관제탑에 “테러리스트가 타고 있는가”하고 물었다. 관제탑은 “공중 납치된 항공기로 오인했다. 미안하다”고 응답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신임 합참의장 지명자인 리처드 마이어스 공군 대장은 14일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KE085편을 테러범에 납치된 다른 여객기로 오인해 잘못된 경보를 내놓는 실수를 했다”고 시인했다.

인천발 워싱턴행 KE093편도 11일 오전 10시경(미 동부 시간) 관제탑의 요청으로 미니애폴리스로 회항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었다. 당시 워싱턴 덜레스국제공항에는 서울과 유럽에서 출발한 여객기 4대가 접근하고 있었다.

딕 체니 미 부통령은 “테러 참사 발생 이후 4대의 민간 항공기가 워싱턴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이 항공기들이 테러의 일환으로 이용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상황에 따라서는 격추나 비상 착륙시킬 의사도 있었음을 내비친 셈. 국적 항공사의 민간 항공기가 80년대 초 소련 전투기에 격추됐던 상황이 재현될 수 있었던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국적 항공사 항공기 두 대가 테러리스트에게 탈취당한 것으로 오인받아 격추될 뻔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미 항공 당국은 하늘에 있던 모든 민간 항공기를 잠재적인 테러 도구로 간주했던 것이다.

<송진흡기자>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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