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직 고검장' 심재륜씨 설레는 첫 출근

  • 입력 2001년 8월 27일 18시 31분


27일 오전 10시55분. 심재륜(沈在淪) 고검장이 검찰 관용차를 타고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 청사에 도착해 현관 앞에 내려섰다. 잠시 멈춘 그의 얼굴은 다소 상기돼 있었다.

그가 대검 청사를 다시 찾는 데는 꼭 2년7개월이 걸렸다. 99년 1월 27일 오후 6시경 홀연히 대검 청사 별관의 기자실에 나타난 그는 ‘국민 앞에 사죄하며’라는 성명서를 통해 ‘정치검사’의 업보를 짊어지고 김태정(金泰政) 검찰총장 등 수뇌부가 동반사퇴하자고 주장해 검찰 안팎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날 얻은 ‘항명(抗命)’의 누명을 벗고 다시 찾은 대검 청사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로 고검장의 신분을 되찾은 그는 이날 사법시험 2회 후배인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에게 ‘부임 신고’를 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경에는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를 찾아가 역시 사법시험 1회 후배인 최경원(崔慶元) 장관에게도 ‘신고’했다.

돌아온 사람이나 맞이하는 사람이나 덕담 외에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고 자리에 참석했던 검찰 관계자들이 전했다.

최 장관은 “복직했으니 풍부한 경험을 잘 살려 조직에 보탬이 돼 달라”고 인사했고 심 고검장은 “집무실과 관용차 제공 등 특별한 예우를 해줘서 고맙다”고 답례했다. 신 총장과도 “개업하신 일은 잘 되셨느냐”는 질문에 “별로…”라고 대답하는 등 의례적인 대화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와 대검에 신고를 마친 심 고검장은 오전 11시반경 서울고검 13층에 새로 마련된 집무실에 도착해 김경한(金慶漢) 서울고검장의 ‘인사’를 받았다.

서울고검은 이미 25일 남녀 직원 한 명씩을 인사발령 냈고 집무실 단장도 마쳤다. 심 고검장의 집무실은 원래 법무장관이 청사를 방문할 때 사용하는 귀빈실이었다.

▼“아이디어내서 할일 해야죠”▼

“2년7개월 만에 다시 출근한 감회가 새롭지만 평상심으로 출근했습니다. 새로운 출근의 의미가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심 고검장은 잠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며 몹시 말을 아꼈다. 그러나 앞으로의 할 일에 대해서는 “아이디어를 만들어야지요. 지금부터 아이디어 짜야합니다”라며 의욕을 보였다.

법무부와 대검, 그리고 서울고검을 거친 심 고검장의 출근길에는 2년7개월 전의 ‘성명파동’ 때처럼 많은 취재진이 뒤따랐다. 심 고검장은 이날 신 총장 주재로 대검 간부들과 함께 오찬을 했다. 오후에는 ‘돌아온 선배’를 만나기 위한 후배 검사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신석호·이명건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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