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장마채비 해야죠"…밭농사 완전 해갈

  • 입력 2001년 6월 18일 18시 39분


오랜 가뭄으로 타들어가던 농심(農心)이 모처럼 활짝 웃었다.

“진작 비가 이렇게 왔으면 고생은 좀 덜 했을 텐데. 그래도 하늘이 고마울 뿐이지….”

농민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엔 웃음꽃이 떠나질 않는다. 정말 오랜만에 내린 ‘비다운 비’였다.

17일 밤부터 내린 단비는 18일에도 계속 이어져 전국의 들녘을 촉촉이 적셨다. 19일까지 전국적으로 100∼180mm의 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 이제 해갈은 시간문제다.

“이 정도면 밭작물은 거의 해갈됐고 논농사에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18일 오전 전남 해남군 계곡면 황죽리 들녘. 어렵게 모내기를 마쳤으나 계속된 가뭄으로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자 올 한해 농사를 망치지 않을까 속을 태웠던 주민들. 이들은 17일 밤에 이어 이날 오전 20㎜의 비가 쏟아지자 시름을 말끔히 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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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 이장 한우현씨(55)는 “10일 전부터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며 “이젠 장마 채비를 갖춰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 유성구 금고동에서 밭농사를 짓는 정기영씨(66)는 새벽녘 빗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삽을 들고 나와 밭고랑을 다졌다. 정씨는 “그동안 메말라가는 고추와 감자를 살리느라 매일 양수기 옆에 붙어 살았다”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처럼 하루만 더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닥을 드러낸 뒤 고인 물에서 썩은 냄새를 풍겼던 유성구 안산동 안산천에도 제법 굵은 물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농민 송모씨(61)는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8일 비가 내리자 대전시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단비를 축하하는 글이 무더기로 올라와 기쁨을 함께했다.

18일 낮 12시경 강원 춘천시 신동면 정족2리 지품뜰. 단비를 맞으며 논고랑에 물을 대던 농민 최종우씨(53)는 “비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밭작물은 물론 논농사까지 망칠 뻔했다”고 말했다.

특히 가장 가뭄이 심했던 강원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지역은 이번 비로 대부분의 논에 물이 고여 모내기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이 마을 김진호씨(46)는 “가뭄 때문에 포기했던 모내기를 다시 하게 됐다”며 기뻐했다.

물길이 닿지 않아 아직까지 모내기를 하지 못한 경기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 들녘.

이 마을 심현덕씨(38)는 새벽부터 농기구를 챙겨 논물 가두기에 여념이 없었다. 천수답 4000여평이 워낙 메말라 있던 터라 아직은 모내기를 하기엔 이른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큰 피해를 보았던 경기 연천군의 밭 4700여㏊는 완전 해갈돼 아직 파종을 못했던 율무 콩 옥수수 등 이 지역 주요 밭작물 농사가 다시 활기를 띨 전망이다.

이번 비로 제한급수에 목말라하던 남해 서해 도서지역 주민들도 해갈의 ‘단맛’을 봤다.

한달째 10일제 급수로 연명해온 전남 신안군 흑산면 수리마을 김보현씨(57)는 “올들어 비구경을 한 것은 거의 5개월 만”이라며 “당분간 제한급수가 불가피하겠지만 이 정도 비면 더 이상 ‘물 동냥’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창원·대전·광주·의정부〓강정훈·이기진·정승호·이동영기자>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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