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밝힌 대우비리]빛바랜 '세계경영' 국민만 멍들어

  • 입력 2001년 2월 2일 18시 55분


대우그룹 회계부정에 대한 검찰 수사로 대우그룹 경영비리의 시작과 끝이 윤곽을 드러냈다. 시작은 김우중(金宇中) 전회장이 영국에 설립한 BFC(British Finance Center)였고 결말은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이었다. 김 전회장의 황당한 ‘세계경영’에 국민만 골병든 셈이다.

BFC는 김 전회장이 ‘세계경영’을 내세우면서 81년 해외 자금관리를 위해 영국 런던에 설립한 비밀 금융조직으로 런던 현지은행인 체이스맨해튼 은행 계좌 등 30개 계좌로 이뤄졌다.

그는 해외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이 계좌에 입금한 뒤 자동차 공장 건설 등 해외 사업에 투자했다. 초기에는 이 같은 금융기법으로 싼 이자와 장기 상환 등 조건이 좋은 해외자금을 동원, 해외법인에 지속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세계화 전략’에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도 “김 전회장이 처음부터 사기행각을 벌일 의도로 BFC를 설립해 활용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95, 96년 이후 해외사업 부진으로 빚이 쌓이기 시작했고 이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돈을 빌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97∼99년에 해외에서 새로 빌린 돈이 미화 157억달러 등 20조원을 넘었다.

이 무렵 외환위기사태로 해외 채권은행들의 빚 상환 독촉이 빗발치고 반면 신규차입은 어렵게 되자 김 전회장은 국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해외 수출대금을 들여오지 않는 방법으로 메워 나갔다. 그는 ㈜대우 장병주 사장 등 핵심측근들을 시켜 가짜로 물건을 수입하고 그 대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97년 10월∼99년 7월 국내 돈 26억달러를 BFC로 송금했다. 또 해외 수출대금 15억달러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BFC에 넣었다. 이 과정에서 김 전회장은 장 전사장 등 핵심측근 4, 5명에게만 자금관리 실무를 맡겼으며 특히 중요한 자금이동과 비자금 조성은 본인이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자금의 해외유출은 곧 국내 계열사의 부실로 이어졌고 대우측은 계열사 부도를 막기 위해 회계장부 조작 등을 통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무더기로 발행했다.

대우 회사채는 주로 투신사가 인수했고 이는 99년 이후 투신사의 대규모 부실로 이어졌다. 투신사 부실은 국내 경제 전반에 암적인 요소로 작용했고 이로 인해 2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되기에 이른 것이다.

검찰은 김 전회장이 BFC를 통해 불법 자금거래를 하면서 이 가운데 상당액을 비자금으로 조성했거나 개인적으로 횡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 일부 단서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전면적이고 본격적인 수사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자금거래의 ‘몸통’인 김 전회장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은데다 관련자들 모두 “자금의 사용처는 김 전회장만이 알고 있다”고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우그룹 비자금 수사는 김 전회장이 귀국하지 않는 한 구속된 계열사 사장 등이 주도한 일부분에 국한돼 제한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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