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돌좌담]'파괴냐 해방이냐'2화

  • 입력 2001년 1월 27일 14시 36분


▼남성의 감정 기준이 문제▼

남윤인순 : 남성이 생각하는 사랑의 감정 기준이 문제거든요. 그것이 대개 일방적이거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이거든요. 그런 태도가 이때까지 성희롱을 많이 유발했어요. 이제는 남성 의식이 변해야 해요. 그건 사랑이 아니잖아요.

민용태 : 남자를 양성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인가요?

남윤인순 : 여성이 동의하는 성,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거죠.

민용태 : 그러니까 여자는 한번 ‘노’(NO) 하면 끝까지 ‘노’ 한다는 얘기입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남윤인순 : 한번 아니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 또 아니라고 하면 그건 아닌 거죠. 상대가 거부하면 그만둬야 하잖아요. 그런데 분명히 아니라고 했는데도 강제로 하는 경우가 있어요. 계속 아니라고 하는데도 ‘내 생각은 아니야’ 하는 식이에요.

민용태 : ‘노’라는 증거 확보가 관건이 되겠습니다.

김신명숙 : 선생님이 우려하시는 그런 일이 현실에서 얼마나 일어날 것 같아요?

민용태 : 저는 다행히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상할 수는 있습니다. 선의의 행동이 엄청나게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걸.

김신명숙 : 그것까지 조심하셔야죠.

민용태 : 미리 쫄아버린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길거리에서 늘 강도를 만나기 때문에 강도가 무서운 게 아닙니다. 강도가 있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은 나의 자유와 자유로운 삶의 느낌을 견제합니다. 나의 모든 행동을 제약합니다.

김신명숙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사회적 관계 속에 살려면 어느 정도 감수하셔야죠. 그리고 지금 말씀하신 부분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승철 : 그런데, 아니, 안티미스코리아 운동하는 사람들은 뭐예요?

김신명숙 : 그게 우리예요.(웃음)

신승철 : 왜 이런 게 시작된 거예요? 안티미스코리아? (미스코리아대회가) 여성을 상품화한다고 해서 생긴 거예요? 지구촌 시대에 미인대회는 어느 나라나 다 있는데.

김신명숙 : 미국에서는 이미 60년대 후반에 미스아메리카 반대운동을 크게 해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큰 이슈가 됐어요.

신승철 : 이념은 좋은데, 우리나라 여성 2000만 명, 아니, 성숙한 여자 150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안티미스코리아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김신명숙 : 글쎄요. 자기 가치관에 따라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겠죠.

남윤인순 :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현상의 문제점을 짚어 보는 좋은 계기였다고 봐요. 왜냐하면 미스코리아대회를 통해 형성된 자본 시장이 굉장하거든요.

김신명숙 : 그런데 왜 사람을 무대에 올려놓고 1등, 2등을 가려야 합니까? 왜 사람을 무대에 세워놓고 걸어봐, 노래해봐, 그러면서 1, 2등을 뽑아야 해요?

신승철 : 그것도 하나의 문화로 봐야지요.

김신명숙 : 따님 없으세요?

신승철 : 있어요.

김신명숙 : 나는 딸이 있으면 그거 못 보게 할 것 같아요.

신승철 : 나는 ‘너 보고 싶으면 봐’ 그러죠.

김신명숙 : 미스코리아대회가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거든요. 우리가 문제삼는 건 대회 자체 보다 행사 방식이에요. 그냥 조용히 하면 괜찮아요. 그런데 이걸 가지고 전야제, 본선, 뒤풀이 등 난리법석을 하면서 정말 여왕이라도 탄생한 것처럼 젊은 아이들한테 환상을 심어주고 한국 여성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몰고 가잖아요. 외모 제일주의로만 몰고 가는데,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21세기를 여성의 세기라고 하는데, 외모만 가꿔서 여성의 세기가 오겠어요?

민용태 : 미스코리아 외모라는 말도 있듯이 보여주기 위해 가공한 미는 비생명적입니다. 눈 없다고 숨 못 쉬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다고 볼 때 다른 감각의 미녀가 있겠죠. 만지기 좋은 말랑말랑한 여자, 품에 드는 여자, 냄새가 좋은 여자, 섹시한 여자….

김신명숙 : 선생님, 그걸 남자로 바꾸면 안되겠어요? 만지기 좋은 남자.

민용태 : 현대의 보여주기 중심적 문화현상에서 소외되기 쉬운 인간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접근은 21세기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김신명숙 : 아름다움은 각자 느끼도록 놔두세요. 왜 무대에 올려놓고 점수를 매깁니까.

신승철 : 나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신명숙 : 아마 예쁜 여자 뽑는 대회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신승철 : 여성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야 너희 여자들 잘 났다고 어쩌구저쩌구 떠드는데 너희들도 똑같이 군대 가’. 의사 사회는 비교적 남녀가 평등한 편인데 군대가 문제예요. 여자는 안 가잖아요. 군대 갔다오면 여자는 조교수가 돼 있고 남자는 전임강사예요. 군 가산점도 없어요. 여자들이 유리한 점이 있다니까 오히려. 군대에서 3년 동안 있다 나오는데, 완전히 인생 허비하는 거야.

김신명숙 : 그런데 선생님, 지금 의료계에서 고위직이나 중요한 직책을 여자들이 다 차지하고 있나요?

신승철 : 여자들은 한 40대 되면 편해지려고 그런 자리를 맡지 않아요. 애 키우느라 힘들기도 하고.

김신명숙 : 맞아요. 그게 군대 가는 것보다 사실은 더 힘들 수 있어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거고.

남윤인순 : 여자도 군대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군대가 바뀌면….

신승철 : 여자들보고 가라는 얘기가 아니라, 갔다 오면 전문가 사회에서 손해라니까요. 진급이 늦어요.

남윤인순 : 군대 경력을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공무원 시험 볼 때 남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건 문제예요.

사회 : 올해 여성단체들이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은 것이 호주제 폐지입니다. 호주제는 가부장제 타파의 상징이기도 하죠.

남윤인순 : 지난 89년 가족법이 개정돼 지금은 호주 승계제도로 남아 있죠. 아들, 손자 순으로 호주를 승계하고 있어요. 호주 승계 제도의 비민주성이나 불평등성에 대해서는 다들 동의하고 있어요. 호주제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남아를 낳아야 한다는 의식을 부추기는 거예요.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버지 성을 강제로 쓰는 나라예요.

호주를 중심으로 가계를 정리하는데 지금의 가족 형태와 잘 안 맞아요. 호주를 중심으로 가구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부부를 중심으로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가 83%를 차지해요. 그렇게 보면 호주제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진단이 가능해요.

호주제를 없애고 부부 중심으로 하든지 아니면 개별 가족으로 하든지 새롭게 개편하자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입니다. 아버지 성을 강제로 쓰는 것도 반대합니다. 지금 호주제 폐지에 대해 여론조사를 해보면 50% 정도는 찬성해요. 정부에서도 폐지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신명숙 : 여론조사 결과가 조사 기관마다 다른 것 같아요. 방송에서 하면 낮게 나오잖아요.

남윤인순 : EBS에서 했을 때는 생각보다 많이 나왔고, KBS에서 했을 때는 낮게 나왔죠.

▼지금은 남자를 보호할 시기▼

민용태 : 저는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는 호주가 뭔지도 모릅니다. 그건 대가족 제도의 유물이고 핵가족이 된 지도 오래 됐어요. 호주제보다 먼저 남자, 여자, 자식의 재산 분배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해요.

남윤인순 : 상속법은 정리가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사해보니까 이혼시 재산분할제도를 활용하는 여성이 별로 없어요. 권리를 행사한 사람이 20%뿐이에요.

신승철 : 법에 공식이 나와 있어요. 이혼시 여자가 얼마를 가질 수 있는지. 호주제에 대해선 민교수님과 생각이 달라요. 그런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문화적 가치를 지켜 가는 미풍이라고 생각해요.

김신명숙 : 그건 호주제 없이 족보만으로도 할 수 있어요.

신승철 : 집안에 누가 있다는 족보를 이어가는 것은 미풍이지요.

김신명숙 : 부모성 같이 쓰기 운동에 대해선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민용태 : 그것에 대해 관대한 의견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신명숙 : 우리가 부모성을 계속 같이 쓰자는 게 아니에요. 전통을 없애고 양성을 같이 쓰자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 성을 법률로 강제하는 현실이 잘못 됐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법률을 바꾸자는 운동이에요.

그런데 호주제조차 폐지되지 않는 판에 성을 자유롭게 선택하자고 하면 남자들이 팔짝 뛸 테니 그게 언제 바뀌길 바라겠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일단 압력 차원에서 양성을 쓰는 거예요. 요즘 젊은 아이들은 아예 성을 쓰지 않고 이름을 쓰는 아이들도 있어요. 아예 이름을 바꾸기도 해요.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나에게 정해준 것이므로 내가 내 이름을 정하겠다는 거죠.

사회 :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를 여성해방의 큰 걸림돌로 여깁니다. 가부장제가 무너지면 여성해방이 이뤄진다고 보십니까.

민용태 : 남성성, 여성성은 문화적 소산입니다. 남녀의 생물학적 특성은 너무 달라요. 전통적으로 여성성은 생명성 육체성으로 보고, 남성성은 관념성 창조성으로 봐요. 여성 문화가 석권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행복하게 잘 사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모터가 튼튼해야 역사가 발전하고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날이 갈수록 아이들이 여성화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반달곰을 보호할 것이 아니라 진짜 남자를 보호할 시기입니다.

김신명숙 : 아직 그런 시기는 아닌 것 같구요. 선생님은 모터는 남성성이고 차체는 여성성이라고 보시는데, 저는 모터도 반쪽은 남성 반쪽은 여성이고, 차체도 반쪽은 남성 반쪽은 여성이라고 봐요.

민용태 : 여성에게도 똑같이 남성성, 즉 혼자 일하고 개척하고 만드는 요소를 높이자는 주장이죠.

남윤인순 : 그건 이분법적인 생각이에요. 여성운동은 그 이분법을 통합하자는 것이에요. 여성성이라는 보편적 윤리를 보다 넓히는 것. 아이들한테도 남성들한테도 확대해서 인류 보편의 윤리로 삼자는 거예요.

신승철 : 남자는 남성이라는 정체성, 여성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더 평화스러운 관계가 이뤄집니다. 나는 애를 키우면서, 남자애는 남성답게 키우고 여자애는 여성답게 키우려고 애쓰고 있어요.

남윤인순 : 저는 남자답게 키워야 한다거나 여자답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신승철 : 그런 게 있어야 돼요. 핵가족화하다보니 애들을 여성스럽게 키우는 경향이 있어요. 남녀차별을 하자는 게 아니에요. 남녀 차이를 정확하게 알고 각자의 핵심 정체성을 갖도록 만들자는 거에요. 이상적인 한국 여성으로 신사임당을 꼽잖아요. 남자는 이순신 장군이구요. 요즘은 그런 게 없어졌어요. 우리 시대에 바람직한 남성상과 여성상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신명숙 : 구체적으로 무엇을 생각하시는 거예요?

신승철 :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게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자라도록 하는 건 가부장제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부성적인 것은 좋지만 가부장적인 건 단점이 많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부성적인 것, 모성적인 것을 각각 긍정적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오히려 평등하고 합리적인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남윤인순 : 지금은 인간다움이라는 합의할 수 있는 인성이 있잖아요.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신승철 : 인성은 남성성, 여성성 두 가지를 다 포함하죠.

남윤인순 : 지금 우리가 남성다움 여성다움이라고 표현하는 건 뭐냐 하면, 사회문화적으로 현상화한 부분이예요. 생물학적 차이에서 비롯된 여성다움 남성다움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거죠. 한국 사회만이 갖는 남성다움의 이미지가 있다구요.

민용태 : 남성과 여성의 문화적 정체성을 무시하자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아가 한 사람의 개성까지 무시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거든요. 왜냐 하면 내가 속한 성의 정체성 상실은 내가 누구라는 정체성까지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생각하는 발판이 없어요.

김신명숙 : 문제는 우리가 남녀 성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다는 거잖아요.

민용태 : 사랑을 하려면 나와 너가 있어야 돼요. 인간을 구성하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남과 여고, 그것이 음양의 구체적인 이정표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분법을 사용했구요. 다시 말씀드리면 남녀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가장 이상적입니다. 사랑의 관계는 나와 너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 러브 유입니다. 그게 아니라 데이 러브 뎀셀브즈라면 사랑이 아니에요. 남자는 남성스러움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여성스러움을 존경해야 되고, 여성 또한 남성스러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방향에서 페미니즘을 논의해야 합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남녀를 구분하는 이분법으로 얘기를 하자는 것이죠.

성희롱 문제도 그래요. 남자는 앞으로 여자가 싫다고 거부하면 무조건 여자 스타일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남자다움을 완전히 무시한 얘기예요. 몇 번 시도를 해보고 싶은데 남성성을 무시하고 여자의 마음대로만 따라주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일방적이에요.

김신명숙 : 지금까지 여자들이 일방적으로 수 천년을 당했어요.

민용태 : 그것을 복수한단 말이에요?

김신명숙 : 복수가 아니고. 자꾸 남녀 관계를 사랑의 관계라고 하시는데, 좋아요. 이젠 그것을 변화시킬 때가 되지 않았냐는 거죠.

민용태 : 사랑의 관계는 대화의 관계입니다. 신을 사랑하게 되면 신과 대화하기 위해 대등관계가 되는 거예요.

김신명숙 : 자꾸 사랑의 관계라고 하는데 제가 만나는 남자들 중에서, 남자들이 한 10명 있다고 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에요. 나머지 9명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동료거나 후배거나 사랑과는 다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민용태 : 그러면 사랑하지 않고 동물로 보는 겁니까?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는 거예요?

김신명숙 : 사랑의 관계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사회 : ‘이프(if)’ 겨울호를 보니 머릿기사가 ‘가부장제와의 전면전’이더군요. 페미니스트들이 종묘에서 아방궁(아름답고 방자한 우리들의 자궁) 행사를 벌이다 유림과 부딪힌 사건도 있던데, 그런 식으로 페미니즘 문화와 기존 문화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까.

김신명숙 : 충돌 요소는 곳곳에 있죠. 유림은 가장 대표적인 세력이고. 지금 여기서도 충돌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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