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변해야한다]검찰/'시녀服' 벗고 법복을 입어라

  • 입력 2001년 1월 4일 19시 03분


95년 말 서울지검의 A중견간부 검사실. A간부는 “검찰이 권력의 시녀가 다 됐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자신이 지휘하던 수사에 관해 검찰 수뇌부 및 대통령사정비서관실과 전화통화를 한 뒤였다.

그로부터 4년 후.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A간부는 법무부와 대검의 요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99년 옷로비 의혹사건 등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 논란이 일었을 때 몇몇 기자에게 “검찰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을 위해 충성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동아일보의 신년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은 ‘정치적 중립’을 검찰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그러나 A간부의 사례는 이런 여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서울지검 형사부의 중견 검사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요원한 꿈이고 정치적 편향은 숙명이다”고 말했다.

 신년특집 2001 변해야 한다
- 변해야 할 한국사회 7대집단 1위 정치인
- 고위관료/대통령 앞이라도 "NO" 말하라
- 재벌총수/'황제경영'으론 세계1등 못해
- 검찰/'시녀服' 벗고 법복을 입어라
- 대통령/'나홀로' 버리고 막힌 귀 열때
- 언론/'정치권 입김' 단호히 배격을

정치적 편향은 편향된 인사에서부터 비롯된다. 정치권력에 의해 검찰 수뇌부가 임명되고 그들을 향해 모든 검사가 ‘상명하복(上命下服)’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정치권력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간부가 권력의 시녀라고 비판했던 95년 말과 권력의 시녀를 자처한 99년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정(司正)과 검찰 인사를 좌우하는 대통령사정(법무)비서관과 법무장관, 검찰총장이 모두 해당 정권의 ‘성골’로 통하는 특정 고교의 동문이었다는 점이다.

95년 말 안우만(安又萬) 법무장관과 김기수(金起秀)검찰총장, 배재욱(裵在昱)사정비서관은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경남고 후배였다. 99년의 박상천(朴相千)법무장관과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 박주선(朴柱宣)법무비서관은 모두 광주고 출신.

‘편향 수뇌부’는 ‘편중 인사’로 이어진다. 지난해 9∼12월 동아일보 법조팀이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로 분석한 ‘검찰의 지역편중인사 실태’(일부내용 2000년 12월15일 A1면 등에 보도)에 따르면 부산경남(PK) 전성기인 97년 3월 PK검사들은 전국 검찰의 요직 46개중 17개(37%)를 차지했다. 반면 광주전남 출신 검사들은 3개(7%)의 요직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박장관이 취임한 직후인 98년 3월에는 광주전남 검사의 요직 비중이 23%로 늘고 PK검사들은 8%로 격감했다.

이 시기에 검찰의 편파 보복사정 등 정치적 중립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 같은 편중인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검찰 안팎에서는 지적한다.

99년 초 ‘항명 파동’ 당시 정치검찰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던 심재륜(沈在淪·전대구고검장) 변호사는 “‘정권에 의한 검찰인사’가 계속되는 한 ‘정권을 위한 검찰’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97년 3월과 98년 3월 검찰지위부
인사시점검찰 인사 지휘부
법무장관검찰총장사정(법무)비서관
97.3안우만(경남고)김기수(경남고)배재욱(경남고)
98.3박상천(광주고)김태정(광주고)박주선(광주고)

▼검찰인사 "로비… 로비…"▼

“검사들 고민 많겠어. (인사청탁을) 하던 대로 해야 하나, 정말 하지 말아야 하나. 저만 안 했다가 저만 죽는 것은 아닌지, 또는 저만 했다가 저만 죽게 되는 것은 아닌지.”

박상천(朴相千)법무장관이 98년 3월 취임하면서 ‘인사의 정상화’를 선언하고 검사들에게 인사청탁을 절대 하지 말라고 지시한 데 대해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비꼬며 한 말이다.

그러나 인사를 둘러싼 ‘잡음’은 계속 이어졌다. 현재 검찰의 요직에 있는 한 중견간부는 검찰 고위간부와 그의 부친이 친하다는 이유로 그 자리로 갔다는 설이 있고 ‘꽃보직’으로 불리는 한 지방 지청장은 실세 간부의 강력한 민원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는 설이 파다하다.

검사들은 인사에 민감하다. 모든 검사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검사들은 인사철이 다가오면 승진과 좋은 보직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안절부절못한다.

검사들의 인사청탁에는 정치인들도 동원된다. 검찰 인사철이 다가오면 내로라 하는 의원들에게 검사들의 인사민원이 쏟아진다는 것은 이미 구문이다. 김두희(金斗喜)전 법무장관은 장관 재직시 정치권 등에서 전달돼오는 인사청탁 메모를 보면서 “검사들이 자존심도 없나”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한 검찰 고위간부는 98년 사석에서 “나는 비록 영남 출신이지만 전부터 민주당의 실세 정치인 세 명과 자주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일반 국회의원은 부장검사 이하 검사들에 대해서나 겨우 민원이 통하고 검사장쯤 되면 정권 핵심의 입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사는 ‘미끼’로도 활용된다. 지난해 퇴직한 검찰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는 검사들에게 자신이 법무장관이 될 것임을 은근히 풍기면서 “자네 다음 인사 때 어디로 가고 싶지”라고 말하며 사건해결을 부탁했다. 검사들은 “불쾌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검사들이 인사에 민감한 것은 검찰의 권력지향적인 문화와 검사 개개인의 엘리트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검사의 거의 모든 보직에 그들 나름대로 엄격한 서열이 정해져 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한 중견검사는 “인사에서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다음 인사에서도 계속 밀리기 때문에 인사 때마다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 한 검사는 “잘 나가다 한직으로 밀려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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