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시대 '아줌마'가 뛴다… 생계형 주부취업 급증

  • 입력 2000년 11월 7일 19시 44분


서울 구로구 ‘일하는 여성의 집’에서 간병인 교육을 받고 있는 주부 송경자씨(36)는 교육을 마친 후 병원에 취직할 꿈에 부풀어 있다. 송씨는 6년 전 남편이 신부전증으로 앓아 누운 이후 파출부, 빵 가게 종업원 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려왔다.

10월부터 실시된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파출부 수입이 인정돼 정부로부터 받는 급여비가 37만원에서 22만원으로 오히려 줄어들자 네 살 난 딸과 병든 남편을 부양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 그는 지금도 한시직인 통계청 인구조사원으로 뛰고 있다.

최근 남편이 운영하던 조그만 제조업체가 문을 닫은 김모씨(42)는 일하는 여성의 집을 찾아왔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남편이 무능력자로 전락했지만 서류 상으로는 경제활동능력을 인정받기 때문에 여성가장 교육을 받을 자격이 안됐기 때문. 구인정보를 봐도 컴퓨터 사용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살림밖에 할 줄 모르는 김씨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파출부나 일용노동자 같은 하루벌이밖에 없었다.

퇴출시대, 남편을 대신해 일자리를 찾는 생계형 주부취업이 늘고 있다.

최근 중앙고용정보관리소(소장 전운기·全云基)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올 들어 신규 취업한 기혼여성은 11만2000여명으로 지난 한해동안의 9만6000여명을 훨씬 넘는다.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주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고용정보관리소 관계자는 “경기가 너무 나쁘면 취업을 지레 포기하고 경기가 좋으면 남편이 주로 생계를 책임지게 되는데 지금은 건설업을 주축으로 한 구조조정으로 주로 남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라 수입이 줄어든 주부들이 취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취업한 기혼여성의 80%인 8만9000여명은 서비스 판매근로자와 단순노무직종에 취업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건설단순노무직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배, 청소원은 2배 이상 늘어나 주부의 취업이 일용 잡역부에 집중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술집 ‘아마존’에서 화재가 났을 때 사망한 여종업원 6명중 4명이 생계를 위해 나온 주부였던 점도 주부 취업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안정적 고용을 위한 지원책은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상황이다. 여성가장 직업훈련 예산은 지난해 140억원에서 올해 91억3600만원으로 줄었다. 2001년 예산은 74억원이 책정돼 있다. 외환위기로 인한 실직사태가 진정됐다고 판단해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자 양산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오순옥(吳順玉)여성정책부장은 “주부들은 당장 생계가 급해 교육을 받고 제대로 취업하기보다는 파출부나 영세기업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며 “음식점 주방보조나 종업원 업무에 종사하다보니 각종 사회보장 혜택에서 제외돼 있는 것은 물론 임금을 못 받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구로 일하는 여성의 집 김수희(金秀禧)기획실장도 “예산이 줄어 작년보다 교육과정을 많이 개설하지 못해 교육생들의 경쟁률이 2대1 가까이 된다”며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연말까지 남성 실업자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어서 이에 따른 주부들의 생계형 취업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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