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검사, 검찰총장 탄핵안 발의에 반발 조짐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8시 47분


한나라당이 박순용(朴舜用) 검찰총장과 신승남(愼承男) 대검차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데 대해 상당수 검사들이 심하게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부에서는 “검찰 상부에서 부추기거나 묵인하는 ‘관제(官製) 데모’가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서울지검에 근무하는 사법연수원 18기(사시 28회) 출신의 각부 수석검사들은 19일 모임을 갖고 “정치권이 탄핵소추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성토하면서 전체 평검사회의 소집과 공식적인 반대 입장 천명 등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검사들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경우 집단사표를 제출하자는 강경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수원 19∼29기 출신 평검사들도 곧 기수별 모임을 갖고 대응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 지청과 수원 인천 등 지방의 일부 검찰청에서도 평검사들을 중심으로 반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서울지검 검사들은 이번 주말 각 기수와 부별 검사모임을 통해 평검사들의 전체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르면 내주 초 전체 평검사회의를 소집해 연대서명 성명서 발표 형식으로 탄핵소추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천명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특정 정당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수사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검찰총장과 대검차장 등 수뇌부를 탄핵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전체 검찰조직을 무력화하겠다는 기도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한 중견 검사는 “정치권이 검찰을 이빨 빠진 애완견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일부 검사들은 국회의원을 구속수사할 경우 법무장관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돼있는 현행 검찰내규를 즉각 폐지하고 부패 정치인들에 대한 전면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권과의 전면 투쟁을 시작해 일본의 도쿄지검 특수부처럼 새로운 검찰로 거듭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검찰의 분위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검사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검찰 전체가 야당과 맞서 싸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더욱 해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지난해 2월 검찰 수뇌부와 맞섰던 검사 집단서명 파동과는 달리 이번에는 일부 검사들이 수뇌부와 이해를 같이해 검찰의 집단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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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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