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정자 인공수정 아이 "이혼해도 부자관계 불변"

  • 입력 2000년 10월 17일 23시 50분


다른 사람의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는 부모가 이혼했을 경우 법적으로 누구의 아이가 될까.

94년 남편 A씨(48)와 이혼한 B씨는 최근 “타인의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한 아들(12)을 계속 전 남편의 호적에 놔두는 것은 부당하다”며 남편의 친자가 아님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서울가정법원에 냈다.

85년 결혼한 이들 부부는 남편 A씨가 불임이라는 사실을 알고 88년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았다. 이후 A씨와의 가정불화를 견디지 못해 이혼한 B씨가 아들을 혼자 키우면서 호적 정리를 위해 소송을 낸 것.

이에 대해 서울가정법원 가사7단독 박영식(朴永植)판사는 “혼인 중인 부부의 합의를 통해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는 남편의 자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B씨에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민법 제844조 1항에 따르면 부인이 혼인 중에 임신한 자식은 당시 남편의 자식으로 추정하도록 돼 있다.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이의 친자관계 설정 등에 대한 규정은 현재 마련돼 있지 않다.

게다가 호주제를 토대로 한 현행법상 B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아이의 아버지는 없게 되는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B씨는 “남편도 아이가 자신의 호적에 남아있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며 “남의 성을 계속 써야 하는 아이의 미래 등을 고려해 친자가 아님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배숙변호사는 “대리모 문제를 포함해 인공수정에 대한 법적 규정을 마련해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의 법적 정체성 혼란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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