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영씨 자필일기 공개]"소명기회도 안주고 사표처리"

  • 입력 2000년 9월 18일 22시 49분


'박지원(朴智元) 전 청와대공보수석의 대출보증 외압설'을 제기하고 있는 이운영(李運永) 전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이 검찰 자진출두를 사흘 앞두고 18일 오후 한나라당을 통해 면직 직후의 자필일기를 공개했다.

 이운영씨 자필일기 전문 보기

사표를 낸 지난해 4월30일부터 7월14일까지의 이 일기는 외압 및 보복 의혹과 당시의 심정 등을 상세히 담고 있어 '이씨의 입' 에 관심이 집중된 현상황에서 중요한 수사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씨의 일기 가운데 주요 부분을 요약, 정리한다.

▼4월30일= 청와대에서 어제 전화통보 왔다는 혐의내용인 4개 업체로부터 1300만원 받았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조작이며 있을 수 없는 혐의다. 아침 9시35분경 4월22일 심문을 담당했던 (사직동)수사요원 중 Mr. Kim이 내 핸드폰으로 전화했다. 자기들이 봐주고 싶어도 못 봐줄 수 있으니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니지 말라고 위협성 말을 했다.

약 5분 후 최수병이사장실에서 전화가 와 최이사장을 바꿔 통화했다. 최이사장은 다짜고짜 "이 놈아, 기금에 폐를 끼쳤으면 사표를 내야지…" 라며 사직을 강요했다. 기관장이 자기 새끼의 목이 날아가는 일인데도 한번 만나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는다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 망연자실해 처와 같이 L. Hotel 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10시경 최이사장한테 또 전화가 와 사표 빨리 가져오라 고 아우성쳤다. 그리고 옆에 있는 정○○ 인사담당이사를 바꿔줬다.

- 14시경 핸드폰이 울려 받아보니 최이사장실 이△△실장의 전화였다. 이사장이 통화를 원한다며 핸드폰 번호를 알려줬다. (…) (최이사장은) "사표제출이 왜 안됐느냐"고 또 다그쳤다. "파면시키면 퇴직금도 못받을테니 빨리 접수시키라"는 협박이다.

- 내가 혼자 십자가를 지는 게 현명하겠다고 생각했다. 사표 내면 사법처리는 않겠다고 청와대에서 박비서관이 이사장한테 통보했다고 손xx이사가 분명히 얘기했으니까.

- 16시40분경 처를 보내 사직원을 영동지점에 제출했다. 사표는 번개같이 처리되었나보다. 17시30분 좀 넘어 전화해보니 퇴직 발령문서가 벌써 컴퓨터에 떴다고 한다.

▼5월1일(노동절)= 사표 내기 전날인 4월29일 16∼17시 사이에 손이사가 와보라고 해 방에 가 있는 동안 최이사장과 3번이나 통화한 후 잘 마무리될 것 같으니 걱정말라고 했는데 밤새 상황이 돌변한 게 무슨 영문인가.

- 손이사가 외출중이라 부인이 전화를 받으셨다. 어제밤 우리 집사람이 왔다 갔다고 하시면서 "안됐다"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손이사 말씀에 사표 내면 사법처리 않고 종결짓는 것으로 청와대와 얘기됐으니 안심하라고 말씀하신다.

- 아크월드의 경우 손이사한테서도 2∼3번 전화가 왔었다. "안 해주면 안된다. 재미없다"는 식의 위협성 강요전화가 있었지만 나는 실무진의 보고대로 밀고나갔다. 그러니 잘라내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최이사장과 손이사가 이렇게 돌변해 사표수리 방향으로 속결 처분하겠는가?

▼5월3일= 보증 요청에 자기들 요구대로 안해줬다고 불만을 가진 박혜룡 현룡 청와대비서관 형제, 혜룡과 고교 동기동창이라는 지점의 K차장이 박수석의 위세를 업고 작당해 나를 망치려 한 것 외엔 내가 이렇게 당할 이유가 없다.

▼6월24일= (이틀전) 동부지청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집에서는 보증거래기업체 명함철과 처의 전화번호수첩, 사무실에서는 5억 이상 고액보증거래업체 47개의 파일을 가져갔다고 한다. 도대체 52일이나 지나 다시 사법처리 수순으로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종대·이승헌기자>orion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