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亂개발지역에 집중…경기 용인주민들 분통

  • 입력 2000년 7월 23일 19시 15분


“그 많던 나무 다 베어 내고 산허리를 잘라 냈으니 이 모양이지, 이건 누가 책임질 거야.”

23일 오후 2시경 집중호우로 수해를 입은 경기 용인시 수지읍 상현리 상현택지개발지구 인근 마을. 이번 비로 가옥 20여채가 침수 피해를 본 마을 주민들은 분노 어린 표정으로 인근에 들어서는 아파트 현장을 응시했다.

주민 양장석(梁長錫·46)씨는 “우리 마을 수해는 모두 아파트 건설로 인해 생겨났다. 산을 깎아 내기 전에는 이 정도 비로는 개울물이 조금 불어나는 정도였다”며 “산에 나무가 없으니 빗물이 마을로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피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500평 비닐하우스가 반파된 윤경순(尹京淳·41·여)씨는 “어제 오후 건설 현장을 찾아가 수방 대책을 세워 달라고 했으나 들은 척도 안했다”며 “오늘 새벽이 돼서야 개천에 걸려 있던 건축 자재를 치워놨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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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의 성복, 신봉지구와 동천2지구내 사정도 마찬가지. 비닐하우스와 가옥 10여채씩 침수 피해를 보았으며 도로 곳곳은 파여 있었다. 주민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건설업체들은 뒤늦게 경사면에 옹벽을 치고 비닐을 덮어씌우느라 분주했다.

수지읍 반경 3㎞이내에서 개발중인 택지 지구만 상현, 성복, 신봉, 동천2지구 등 4곳. 이미 들어선 수지1, 2지구 죽전취락지구로 온통 아파트뿐이고 이제 녹지는 찾아보기도 어렵다. 수지와 구성 등 서북부 지역의 이번 비 피해와 관련해 ‘난개발로 인한 전형적인 수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용인시에 내린 평균 강수량이 245.5㎜인데 비해 수지읍은 평균 123㎜, 구성면 180㎜에 불과했다. 이 정도 수량이라면 예전에는 피해가 거의 없었지만 이번에는 각각 50∼60여채의 주택이 침수되거나 반파되는 피해를 보았다.

또 기흥읍에서는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흘러나온 토사로 배수관로가 막혀 빗물이 역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기흥읍 신갈리 H아파트 주민들은 토지공사가 단지내 관통도로를 아파트 지층보다 높게 시공하는 바람에 지하주차장으로 빗물이 흘러 차량이 침수됐다고 주장했다.

경기 용인시의 난개발이 가져올 수해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이미 수차례나 경고했었다. 연세대 조원철(趙元喆·토목공학)교수는 4∼6월 청와대 수해방지기획단 및 관계 전문가들과 함께 용인지역을 둘러보는 자리에서 산을 깎아 내고 계곡 주변의 소(小)하천을 흙으로 메우며 들어서는 아파트 숲을 가리키며 “방재시설 없이 개발이 계속될 경우 집중호우가 수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녹지와 소하천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이면서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한 채 빠른 속도로 흘러가 피해가 커질 가능성. 조교수는 “국내 80곳을 대상으로 재해영향평가를 실시한 결과 개발 지역은 빗물을 흡수하지 못해 같은 양의 비가 내리더라도 수량이 개발 전보다 60∼70%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콘크리트 구조물과 아스팔트 도로가 이른바 ‘홍수의 고속도로’역할을 한다는 것.

골프장의 경우도 아파트보다는 녹지가 많지만 지표면의 빗물 흡수력이 떨어져 처리해야 할 빗물의 양이 10∼30%나 늘어난다는 것이다.

조교수는 “수해 방지를 위해 정부가 내년부터 해마다 2조4000억원씩, 10년간 24조원을 투자할 계획이지만 사후 대책보다는 개발 단계에서 환경과 재해 영향을 검토해 난개발을 방지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용인〓송상근·남경현·이동영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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