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버스 참사]火魔속 제자들 선생님이 살려

  • 입력 2000년 7월 15일 01시 14분


고교생 13명의 생명을 앗아간 경부고속도로에서의 대형 교통사고. 그 아수라 같던 참사현장에서도 제자들을 살려낸 한 여교사의 침착하고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14일 사고 직후 가장 먼저 버스 밖으로 나와 5분여 동안 20여명의 학생을 구조해 낸 부일외고 독일어과 1학년 담임 윤현정 교사(31). 그는 자신과 학생들이 탄 차가 추풍령휴게소를 막 지난 뒤 갑자기 ‘끼이익’ 하는 브레이크 파열음을 내며 앞차와 부딪치는 순간 좌석에서 튕겨져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버스 유리창 깨고 탈출▼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마저 정신을 잃으면 아이들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윤교사는 몸의 중심을 잡고 문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버스 문 쪽에서는 ‘쉬익’ 소리와 함께 화염이 솟구쳐 올랐다. 앞문으로의 탈출을 포기한 윤교사는 버스 중간부분에 금이 가 있는 유리창을 학생들과 함께 깼다.

“내가 먼저 나갈 테니 내 손을 잡고 나와라. 아무 일도 없을 테니 다들 침착해야 한다.”

키 160㎝의 가녀린 윤씨는 차 밖으로 나오자마자 손을 뻗쳐 제자들을 한명씩 밖으로 꺼냈다. 버스 앞쪽에서 일어난 불길은 점점 뒤쪽으로 번져왔지만 윤씨는 “서두르지 말고 침착해라. 남자애들은 여자애들 나오는 걸 도와주라”며 제자들을 독려했다.

그러기를 5분여. 나올 수 있는 학생들이 모두 나오자 윤씨는 또 다른 제자들을 구하러 간다며 추락한 버스 쪽으로 달려갔다.

▼"침착 침착" 학생들 인도▼

탈출에 성공한 김하나양(16)은 “침착하게 지시해준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아마 불타 죽었을 것”이라며 끔찍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노처녀 선생님’으로 불리는 윤교사는 자상한 성격으로 학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이번 사고로 숨진 이하나양은 “선생님 결혼하는 게 내 소원”이라고 할 정도로 윤교사를 잘 따라 살아남은 학생들의 눈시울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숨진 제자에 얼굴들수 없어"▼

병상에 누워서도 슬픔을 거두지 못하는 윤교사는 “내가 구조를 제대로 못해 학생들이 많이 죽었다”며 “숨진 제자들과 그 부모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흐느꼈다.

<김천〓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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