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5년 실태점검]재정자립 엉망-판공비만 '펑펑'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27분


일부 광역자치단체에서 올해 재정상태가 더 나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단체장 등이 사용하는 판공비 액수를 오히려 늘려 책정한 것으로 29일 밝혀졌다.

또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들이 각종 모임 비용 등으로 연간 수천만∼수억원의 판공비를 쓰고 있지만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고 단체장들이 실(室) 국(局)에 배정된 판공비를 전용하면서도 이를 숨기고 있어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동아일보와 참여연대가 지방자치제 실시 5주년(7월 1일)을 맞아 공동으로 기획 취재한 결과 전국 16개 광역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지난해보다 낮아진 부산 대전 경기 충남 충북 전남 등 6개 지자체가 올해 판공비를 오히려 늘려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26.9%에서 26.8%로 다소 낮아진 충남도는 올해 전체 판공비(지사 판공비+실국 시책업무추진비)를 13억6500만원으로 편성해 지난해(5억7139만원)보다 두배 이상으로 늘려 잡았다.

부산시는 재정자립도가 지난해 80.9%에서 올해 78.3%로 떨어졌으나 시장 판공비는 5억1579만원에서 5억4000만원으로 5% 늘릴 예정이다. 각 실국의 시책업무추진비도 지난해 9억9571만원에서 올해 14억3900만원으로 45% 증액됐다.

경기도의 경우 올해 재정자립도(69.3%)가 지난해에 비해 2.4%포인트 떨어졌지만 전체 판공비는 49% 늘린 6억9000만원으로 책정했다. 재정자립도가 지난해에 비해 1∼4%포인트 정도 낮아진 대전시 충북도 전남도 등도 올해 전체 판공비를 10∼30% 늘려 사용할 계획이다. 이밖에 대구시가 전체 판공비를 6억4393만원에서 12억6600만원으로 두배 가량 늘려 잡았으며 재정자립도가 다소 높아진 서울시 등 6개 지자체도 올해 판공비를 20∼97% 인상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광주시와 울산시 등 4개 지자체는 올해 판공비를 다소 하향 조정했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가 정보공개를 신청해 관련 자료를 열람한 결과 전북지사는 지난해 471차례에 걸쳐 간담회와 오찬 등을 하며 식사비로 판공비 2억1000여만원을 썼다. 이중 한번에 100만원 이상을 쓴 것이 37차례였으나 전북도는 참석자 명단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고 103건에 대해선 참석 인원을 밝히지 않았다.

경기지사는 지난해 12월 판공비 내용을 공개하며 지출 날짜와 금액, 영수증, 지출 대상 등을 숨기고 항목별 총액만 밝혀 ‘통계자료’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명건기자·부산·전주〓조용휘·김광오기자>gun43@donga.com

▼'판공비 공개' 시민연합 결성▼

자치단체장들이 쓰는 판공비의 내용을 전면 공개할 것을 촉구하는 전국 시민단체 연합체가 결성됐다. 참여연대를 비롯해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성남시민모임’ 등 전국 3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판공비 공개운동 전국네트워크’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발족식을 가졌다. 전국네트워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전국 248개 지자체 중 126개(광역 16개, 기초 110개)에 올해 판공비 사용 명세와 지출증빙서류 등의 공개를 요구하는 정보공개 청구서를 일제히 접수시켰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발족 회견문에서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이 겉으로는 ‘지역 발전을 위해 판공비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내용을 공개하라는 시민단체의 줄기찬 요구는 무시해왔다”며 “판공비도 세금인 이상 주민들은 당연히 사용한 내용을 알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공개를 거부하거나 불성실하게 공개하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소송 제기는 물론 지방선거 때 공개거부 사실을 유권자에게 알려 반드시 심판 받도록 하겠다”며 앞으로 지자체들이 예산을 낭비할 경우 예산환수운동도 강력히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하승수(河昇秀)변호사는 “판공비 공개운동은 지자체의 예산사용에 대한 시민의 감시기능을 강화시켜 무분별한 예산집행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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