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운전예절]한수진/남의 집앞 주차 전화번호라도…

  • 입력 2000년 6월 26일 19시 34분


제 부모님은 오래 전부터 “젊은 사람들이 너무 편한 것만 찾아서 탈”이라면서 ‘단독주택 예찬론’을 피력하는 편이었습니다. 단지 편하게 살기 위해 아파트로만 몰리는 게 영 못마땅해 보인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런 저희 부모님도 얼마 전 “안되겠다. 아파트 가야겠다”고 두 손 번쩍 들고 말았습니다.

“틈만 나면 대문 앞을 점거하는 자동차들과 실랑이 벌이는 것도 이젠 지쳤다. 이웃끼리 주차 구획 정리를 겨우 마쳤는가 싶었더니 어디선가 알 수 없는 ‘무적차량’들이 수시로 나타나서 차고 앞까지 가로막는다. ‘급한 사정이 있나보구나’하고 부아를 달래는 것도 한 두번이지…. 도대체 연락처 적은 쪽지도 안 남겨 놓는 몰염치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을 수 있는 거냐.”

평소 싫은 소리를 잘 안했던 두 분이 ‘단독주택 예찬론’의 소신을 꺾으며 저에게 쏟아놓은 분노였습니다.

쉰을 한참 넘겨 배운 운전이 “참 재미있다”던 어머니가 최근 지하철과 버스로 복귀했던 이유도 거기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 가서 주차 장소 찾는 곳도 고역인 데다 잠깐 차 끌고 나가면 금방 문 앞을 점령하는 ‘무(無)쪽지 차량’을 보면서 속 끓이는 게 이젠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고 합니다.

점점 길 막히는 괴로움보다 주차하는 고민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주택가의 주차 전쟁은 이웃 인심까지 상하게 합니다. 차 모는 사람은 어차피 어딘가 차를 세워야 하고, 주차 문제가 하루 아침에 해결될 게 아니라면 차를 댈 때 타인을 배려하는 최소한의 마음이라도 함께 ‘세워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특히 메모지 한 장 남기는 것은 그런 역지사지(易地思之) 중에서도 기본 아닐까요?

한수진(SBS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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