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사모전환사채 유효"…법원, 무효訴 기각

  • 입력 2000년 6월 23일 19시 37분


삼성전자가 이건희(李健熙)회장의 장남 재용(在鎔)씨에게 450억원어치의 사모(私募)전환사채를 발행한 데 대해 참여연대가 낸 ‘무효청구소송’과 관련, 재판부는 이런 사채 발행이 문제가 있다고 보면서도 참여연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변동걸·卞東杰부장판사)는 23일 삼성전자의 전환사채 발행 무효확인청구소송 항소심 판결에서 1심과 같이 참여연대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현행 상법이 전환사채(CB) 발행에 관한 사항을 회사 이사회 결의에 일임하고 있어 전환사채 발행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재벌의 편법 증여에 합법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 삼성전자의 전환사채 발행이 재용씨에 대한 사전 상속이나 증여인 것으로 보이며 절차에도 하자가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런 상법의 맹점이 재벌의 편법증여를 합법화하고 주주의 감독권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면서 “전환사채 발행에서도 주주에게 우선적으로 매수권을 인정하는 한편 원칙적으로 공모(公募)방식으로 강제해야 하며, 사모방식의 발행은 주주총회의 특별 결의를 거치고 주주에게 사전에 발행사실을 통보하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전환사채 발행은 대외적인 거래행위이므로 사채가 발행돼 유통될 상황에 놓인 경우 거래의 안전과 법적 안정성을 고려해 무효원인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면서 “사채발행을 결의한 이사회가 정족수 미달이었으나 회사의 대표이사가 사채 발행을 결정한 이상 이사회에 하자가 있더라도 무효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는 △삼성전자의 정관이 지나치게 모호해 무효이며 △전환사채 발행이 신주인수권과 주주평등권을 침해했으며 지배권 확보를 위한 일탈행위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앞서 수원지법 민사합의30부는 97년 12월17일 참여연대의 주장을 받아들여 재용씨가 주식을 상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결정을 내린 반면 같은 법원 민사합의10부는 같은 날 “CB발행에 절차상 하자가 없고 현저하게 불공정한 행위가 아니다”며 본안소송은 기각했다.

사채 발행의 ‘사모방식’이란 기업이 특정 개인이나 기업을 정해 채권을 매각하는 방식. 반대로 ‘공모방식’은 불특정 다수인에게 채권 매수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신주인수권’은 회사가 신주를 발행하는 경우 기존 주주들이 우선적으로 배당을 받을 권리를 말한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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